대부분의 독서는 많은 유익함을 가져다준다. 특히 고전은 자양분으로 충만해 있다. 막다른 길에 서 있다고 느낄 때 읽는 고전은 지성의 고양에 특효약이다.
"고전은 어렵고 지루한데 왜 읽어야 하나요?"
"시대적 배경이 달라서 현대식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린 많은 걸 배울 수 있거든요."
오래전, 인문학 강좌에서 어느 학생이 던진 질문에 강사가 위처럼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좀 더 선명하게 와닿았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답답할 때면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는다. 그리고 고전이나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무엇인가의 프로페셔널이 되려고 한다면 극복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급함, 조급함, 앙갚음을 포함한 복수욕, 정복욕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것들이 범람하는 강물처럼 거칠어진 마음이 되어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프로가 되기 위해 지양해야 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말하는 복수욕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을 향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사심을 채우려는 프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욕심에 사로잡힌 지식은 자아를 병들게 하고, 허세로 가득한 지식은 세상을 더럽힌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채우기 전에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습득하면 된다.
이십 퍼센트의 인구가 나머지 인구를 먹여 살리거나 이끌어간다는 얘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일부 사람들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조건이 유리한 건 맞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재능도 꾸준히 갈고닦으면 언젠가는 빛이 나기 마련이다.
가지고 있는 언어가 빈약하면 표현도 빈약해지고, 실제로 사고와 감정이 충분히 표현된다고 할 수 없다. 동시에 그 언어의 질과 양이 자신의 사고와 마음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나 독서, 공부로 언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것은 자연히 우리의 사고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기주 작가는 말에도 인격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 따라 자라온 환경이나 의식 수준, 취향 등을 가늠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언어습관은 고치기 힘들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풍부한 경험이나 독서 등을 통해 언어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
"누나한테 그렇게 밖에 말 못 하겠니?"
큰 조카한테 함부로 말하는 막내 조카를 나무란 적이 있다. 아무리 어린애라고 해도 말은 곱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억지로 꾸며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예쁜 그릇에 음식을 정갈하게 담을 필요가 있다. 내가 내뱉은 거친 말은 결국 내 귀가 듣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교양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듯이 봐야 한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을 찾는다면 그 사람의 전체를 보는 것은 삼가야 한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전체를 통해 본 사람은 절경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