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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유 Jan 02. 2021

탄생을 준비하듯 죽음을 준비하기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커스틴 존슨은 자신의 부친인 딕 존슨에게 죽음을 시뮬레이션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딕은 점차 기억력과 건강이 쇠퇴하면서 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와있는 노인이다. 커스틴과 딕은 이미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상실한 공통의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에 죽음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 즉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의 필요성을 더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딕은 여러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길을 가다가 건물에서 떨어진 실외기에 맞거나 공사건축자재에 부딪혀 죽기도 하고, 심장마비로 죽기도 한다. 그러한 죽음의 가정 상황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커스틴과 딕, 주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상실의 경험들을 추억한다. 더불어 현재의 생의 찬란함, 함께 있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공유한다. 커스틴 모친의 생에 대한 서로의 추억을 나누고, 그녀를 상실해가던 과정에 대한 서로의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현재 마주한 딕에 대한 상실의 과정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한편, 아이들의 등장은 탄생과 죽음의 덧없음을 손쉽게 보여주기도 한다. 딕과 함께 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일어나지 않는 딕에게 “안 일어나면 바지 벗길 거에요.”라며 딕을 놀리기도 하고, 점차 기억력을 상실해가는 딕의 모습을 마냥 천진하게 재미있는 상황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무언가가 아닌 그저 하루의 일상처럼 새롭고 재미있는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티없는 시선 속에서 죽음과 상실의 과정은 한 번 더 쉬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탄생의 순간 만남의 시작을 기대하고 준비하듯, 죽음의 순간과 이별의 시작을 준비한다면 자기 앞에 놓여진 생을 조금이나마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상실과 죽음이 두려워 다가가지 못한 순간들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기보다, 상실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갈 줄 아는 생에 대한 사랑, 당신에 대한 사랑. 오늘은 어제보다 더 용기있는 사랑을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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