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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무언의 배려로 오늘도 잘 버텼다.

by 은연주



문득 내 브런치 메인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크리에이터 배지가 달려있다. 내가 흘린 눈물이 누군가의 눈에는 반짝여 보였나. 그렇게 봐준 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아님 눈물을 반짝이게 비춰준 햇살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마웠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고마울 게 없는 상황인데도 고마워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글을 쓰면서 마음에 근육이 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낀 때를 빼고 닦아내는데 요가나 등산이 도움 됐다면 그 마음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건 아마도 글쓰기였다.




어릴 때 손에 잡히는 모든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을 때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줬다. 평생 읽는 사람으로만 지내다가 쓰는 사람이 되어보니 글쓰기란 내 세상을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다.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지만 읽는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어떤 아이디어, 작은 용기, 참회나 눈물 혹은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흩어져버린 기억 너머의 먼 옛날을 더듬어보면 나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 이야기를 주워 담듯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나 마법 양탄자를 만들어내는 천부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만 되는 것이 작가인 줄 알았다. 특히 몽실언니를 읽을 때, 해리포터를 읽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세상에는 타고난 천재도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라는 걸. 천재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걸. 내가 사랑에 배신당하고 아파보니 똑같이 큰 실연을 한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듯이 말이다.




세상의 커다란 이치 하나를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고마움이 느껴졌다. 오늘은 하루종일 고마움이 가득한 하루였다. 내게 피드백을 준 대표나 동료의 마음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환하게 인사해 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료에게서는 다정함을 느꼈다. 늘 그렇듯이 하는 야근인데도 오늘은 지치지 않았다.


퇴근길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났다. 꽃향기를 가져다준 바람에게 고맙다. 잊고 지냈던 기억이 살포시 떠올랐다. 이맘때의 라일락 향기를, 초여름의 아카시아 향기를 무지 사랑하는 나를. 걷다가 어디선가 조용히 배달된 꽃향기에 묻어있는 작은 행복을.


이 마음을 담아서 계속 써야지.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아마 나를 닮아 아름다운 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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