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꿈이었지만 엄마가 못 된 게 차라리 다행인 걸까.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볼 때마다 종종 상상을 해본다. 남편과 나 사이에 만약 아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어떤 아빠가 되었을지. 남편과 결혼 전 동거하는 동안 그의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강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떠들썩한 금쪽이 절약 엄마 편을 보고 나서야 남편의 절약 정신도 강박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은영 선생님이 오죽하면 금쪽이 엄마에게 성격화가 되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던데 그건 강박성 성격장애라는 뜻이겠지.
한국의 우리 신혼집은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남편은 난방비를 엄청 아꼈다. 내가 안방의 문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닫지 않으면 온기가 날아간다고 집착적으로 잔소리를 해댔다. 천장이 높고 계단 있는 집이라서 겨울에는 늘 썰렁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내가 보일러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지난달 난방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아냐면서 들들 볶았다. 우리가 한겨울에 보일러를 30도로 설정하고 후끈후끈한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사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절약은 좋지만 이렇게 혼나는 게 맞는지 가끔 의아했다.
솔직히 우리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자라서 그의 행동이 가끔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의 유년기가 찢어지게 가난하다가 성장기에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경우도 아니었다. 하지만 돈을 펑펑 쓰는 것보다 아끼는 게 당연히 더 좋고 지구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 남편의 말에 기꺼이 따랐다. 게다가 남편 본인은 오히려 더위를 많이 타서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 18도에 정 추우면 집에서 잠바 입고 있는 게 코끝이 서늘해서 좋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강박인 줄 몰랐다. 그저 추위를 잘 타는 나와 더위를 못 참는 남편의 온도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점점 그 사람은 나를 조금씩 통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방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큰일 나듯이 집착하는 것, 늘 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하게 지내는 것 등 작은 생활 습관들 모두 다 남편의 강박이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 세상엔 정말 부모 자격 없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을.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에 아무나 아이를 낳기 전에 자기 인식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편은 무의식 중에 자기가 꿈꾸는 좋은 아빠는 절대 될 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딩크라고, 자기가 애를 낳는 건 태어나지도 않은 애한테 불행하고 미안한 짓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결혼 전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는 내게 남자들 원래 다 그렇다고, 막상 자기 애 낳아보면 다르다고 말했다. 엄마들 뿐만 아니라 오지랖 넘치는 어른들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았다. 택시 기사님도 미용실 원장님도, 나보다 겨우 10살만 많으면 생판 모르는 남들조차 다들 입에서 자판기 버튼 누르듯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일단 낳아봐. 남자들은 일단 애 낳으면 바뀌어. 안 바뀌면 혼자 키우면 되지 뭐. 여자는 애가 있어야 돼."
나도 어른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깐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이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니면 지나치게 책임감이 높으니깐 쉽사리 결심할 수 없나 보다 생각했다. 둘 다 틀렸다. 남편의 자기 책임감 0점. 이쯤 되면 자기가 피해자고 내가 가해자라는 이상한 망상과 편집증에 시달릴지언정 적어도 아빠라는 역할에 대한 메타인지는 완벽하다고 칭찬해줘야 하나.
이제 내 나이도 아이를 갖기엔 적지 않다. 나는 애 하나쯤은 키우는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영원히 직장인으로만 살면 엄마라는 역할에 언제든지 변수가 될 수도 있으니 미래를 고려해서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자격증도 따놨었다. 엄마 아빠처럼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내게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희망을 버리는 게 아니라 솔직히 현실이 그렇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내 신체적 나이도 생각해야 되지만, 그전에 아이 아빠를 찾는 일에서부터 이미 커다란 난관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 자체가 완전히 깨졌는데 이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다시 찾는 일, 근데 그 사랑의 대상이 좋은 남편이자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일지는 모두 별개의 문제다. 아, 방송인 사유리처럼 정자를 기증받아서 싱글맘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으려나. 꼭 내 배 아파 낳지 않아도 가정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애도 개도 잘 키우고 싶었지만 일단은 개라도 잘 키우는 수밖에. 언젠가 다 늙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다 지나고 보니 무자식이 상팔자 맞더라!" 깔깔 웃으며 여유롭게 골프나 치고 있을지도. 애써 정신 승리를 해본다.
애도 없으면서 매주 금쪽같은 내 새끼를 열심히 챙겨보고 가족심리학이나 관계심리학 책을 찾아 읽는다. 그러나 얄궂게도 운명은 내게 엄마라는 역할을 주지 않았나 보다. 나는 이렇게 희망을 버리고 대신 포기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