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에게
오빠 잘 지냈어? 왠지 오빠도 잘 지내지 못했을 것 같아. 아주 조금은 내가 그립기도 하고 대부분 내 탓을 하거나 원망하면서 시간을 죽였겠지.
요즘 나는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서 상상을 해봐. 오빠가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뒤부터 내 삶이 다시 엉클어진 것 같아. 이제 정말 목적 없이 서로 물어뜯는 싸움만 남았구나 생각을 하면 다시 심연에 빠지는 마음이야.
오빠를 마주할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내가 오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어. 아마 구역질이 올라오거나 숨이 가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오빠는 오히려 당당하게 내 두 눈을 바라볼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말이야. 난 오빠의 그 아무 감정 담기지 않은 눈동자를 보고 덜컥 겁부터 나겠지.
우리가 함께하는 내내 오빠의 눈망울을 바라보면 순수함이 담겨있는 것 같았어. 눈동자에 비치는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 알게 되었어. 하지만 순수하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은 걸까? 오빠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것도 담길 수 없는데 그때는 그걸 멋모르고 순수하게 본 건 아닐까 싶어.
추억은 아무 힘이 없지만 나는 오빠랑 함께했던 옛날을 자주 생각해. 아니 내가 자의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생각나. 무의식적인 반응이라서 몹시 불쾌할 정도로. 그래서 자꾸 무기력해져. 나는 영원히 오빠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서.
오빠를 탓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사랑한 만큼 연민도 커서 내가 괴로운 것 같아.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데. 오빠에게 느끼는 연민이 나를 더 병들게 만드는 것 같아. 이제는 그만두려고. 모든 걸 뒤로 하고 여여히 걸어갈 거야. 그러니 오빠는 오빠의 인생을 다시 되찾길 바라. 자아를 잃어버린 껍데기뿐으로 남지 않길 바랄게. 그 대신 나를 잃은 것을 영원히 후회하고 참회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난 이제 오빠를 놓아주려 해. 안 그럼 내가 죽을 것 같거든. 오빠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제발 나를 자유롭게 해 줘.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