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뿔. 속병이 납디다. 저도 기자회견 하고 싶어요.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먼저 나서서 힘 빼지 않아도 시간이 다 해결해 주니깐 참으라고 가르쳤던 엄마 아빠였다. 어릴 때는 그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억울하고 답답해도 나 대신 “아니 지금 우리 애가!” 이렇게 밖에서 삿대질하며 싸워주는 부모가 아니었다. 대신 엄마 아빠는 나한테 어린이를 위한 논어, 만화로 읽는 탈무드, 이솝우화 같은 책을 읽어줬다.
덕분에 겉으로 조금 더 성숙해 보이기는 하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의외로 속이 깊다거나 뿌리가 단단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일단 참고 보는 습관이 생겼고 장녀 콤플렉스처럼 상대방 입장을 항상 먼저 이해해 줬기 때문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잠잠해지는 줄 알았는데 개뿔 전혀 아니었다.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
홍길동을 사랑하고 배려한 현재의 대가는 그들의 침묵과 방치된 내 이혼이다. 그의 부모는 우리 엄마 아빠 얼굴 보는 것도 너무 미안하다는 이유로 만남은커녕 전화로도 단 한 번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걸 또 습관적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 내가 너무 등신인 걸까. 물론 아빠와 시아버지가 따로 두 번 만났으나 남편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궁극적으로 이혼이 되더라도 어른들은 의도적으로 껄끄러운 자리를 피하겠지. 우리 엄마 아빠가 먼저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뭣하러 보냐고 치를 떨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내 이혼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행여나 내게 더 상처가 될까 봐. 마치 내가 단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온 가족이 애쓰며 내 눈치를 본다. 다들 이 기묘한 연기에 동참해주고 있다.
시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2월에 내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너희 둘 다 계속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이제는 그런 거에서 벗어나서 이 관계 정리하고 너도 니 인생 살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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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둘 다 계속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너희 둘 다 계속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너희 둘 다 계속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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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도 순간 공황발작이 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는데 또 습관적으로 이해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시아버지는 남편 같은 사람이니깐 이런 상황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악의를 갖고 하신 말은 아닐 거야.'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그 말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아버지를 이해하는 척 내 감정을 스스로 묵인한 벌은 결국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와 울화로 앙금이 남는다. ‘저한테 상처가 되는 말인 거 모르세요? 상대방 마음 헤아리고 배려할 줄 모르세요? 그게 다 구업 쌓는 건데요.’라고 왜 따지지 못했을까. 나는 시아버지를 싫어하는 것보다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 한 나 자신이 더 싫다. 홍길동에게 연민과 혐오라는 양가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보니 내가 점점 더 미쳐가는 것 같다.
두 시간이 넘는 민희진 씨의 기자회견 영상을 다 봤다. 제삼자로서 새삼 깨달은 게 있다. 참으면 속병이 난다. 그녀가 받은 10년 간의 정신과 치료보다 한 번의 기자회견이 화병에 더 도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지금도 나는 내 감정을 무의식 중에 계속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며 승화하는 것 같다. 은연주 참지말자. 울분을 다 토해내자. 나도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홍길동 이 ㅆㅂ새끼가. 아 죄송해요. 저도 스트레스 풀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