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켐니츠
독일 통일 후 35년이 흘렀다. 하나로 합쳐진 베를린은 새로운 에너지로 완전히 별천지의 세상이 되었고, 동독 내 주요도시였던 드레스덴이나 라이프치히도 전쟁 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복원하였다. 이제 이들에게서 공산주의 국가인 동독의 분위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엄연히 실존한 역사였으므로, 무너진 동독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산업도시로 번영하였던 켐니츠(Chemnitz)를 택했다. 켐니츠에서 어떤 분위기를 마주했는지 네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카를 마르크스 기념비
켐니츠에서 가장 시선을 강탈하는 주인공은 '큰바위 얼굴'이다. 얼굴 크기만 7m 이상, 받침대를 포함하면 13m 높이의 거대한 카를 마르크스 기념비(Karl-Marx-Monument)는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바로 그 '칼 맑스'의 두상을 예술적 형태로 조각한 것이다. 2차대전 후 켐니츠는 도시 이름이 카를마르크스슈타트(마르크스의 도시)로 강제 개명되었고, 그 이념화의 일환으로 1971년 거대한 마르크스 기념비가 설치되었다. 뒤편 거대한 건물은 당시 SED(동독 공산당) 본부였던 곳.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동독의 심장과도 같은 흔적은 이질적인 에너지로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계속 수행 중이다.
Scene 2. 마르크트 광장
그렇다면 켐니츠는 원래 어떤 도시였을까? 중세부터 광업이 발달해 나름 부유한 도시였고, 이러한 인프라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도시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켐니츠는 19세기 당시에도 독일에서 산업과 공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자동차나 기관차 등의 제조업도 융성하였다. 이 시기 형성된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구 시청사와 신 시청사가 나란히 있고, 대형 쇼핑몰 등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다. 중세를 만나는 느낌은 덜하고, 미학보다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켐니츠의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도시에 공장 노동자 비중이 높았고, 동독에 속한 뒤 자연스럽게 주요 공업도시로 계속 발전하였다.
Scene 3. 슈타트할레
현대식으로 멋을 부리긴 했는데 요즘 스타일과는 확연히 거리감이 있는 슈타트할레(Stadthalle)는 켐니츠에서 각종 공연과 행사 등이 열리는 곳이다. 짐작하듯이, 슈타트할레를 만든 것은 동독 정권이었으며, 카를 마르크스 기념비 바로 맞은편에 함께 지었다. 큰 홀과 고층빌딩이 콤플렉스를 이루어 오늘날에도 몹시 분주하게 원래의 모습을 강한 존재감으로 드러내는 중이다. 바로 옆에는 중세 성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옛 성탑인 붉은 탑(Rotes Tor)이 남아있다.
Scene 4. 테아터 광장
19세기 켐니츠가 공업도시로 크게 성장할 때, 말하자면 '신 시가지'로 새로 개발된 지역의 중심 테아터 광장(Theaterplatz)이다. 짐작하듯이 극장(테아터)이 있는 광장이기 때문. 오늘날에도 켐니츠의 문화예술 중심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광장 정면의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성 페트리 교회(St. Petrikirche)와 알베르트 왕 미술관(König-Albert-Museum)이 양옆에 있다. 알베르트 왕 미술관은 20세기 초 작센왕국의 마지막 왕 알베르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필 날씨가 많이 찌푸리기도 했지만, 건축물과 거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독일에서 흔히 보았던 것과 사뭇 달랐던 켐니츠. 옛 모습조차도 산업혁명 시기 효율을 중시하여 큰 규모에 방점을 두었고,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는 그러한 색깔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켐니츠는 그 모든 시간을 있는 그대로 기억한다. 때로는 서늘하고 삭막한 풍경, 때로는 언발란스한 과잉 표현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랜 공업도시로서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켐니츠는 2025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기 어려운 독특한 고유의 문화가 도시 기저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