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힐데스하임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거의 모든 곳이 폐허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독일의 전통적인 모습은 대부분 전후 복원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된 뒤 서울을 재건할 때 사대문 안쪽은 조선 또는 대한제국 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도시를 개발하려면 그 외곽에 신시가를 따로 만들어 전통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 것과 같다.
힐데스하임(Hildesheim)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도시의 복원 스토리는 조금 더 특별하다. 거기에는 '장미'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되살아난 힐데스하임의 매력을 네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대성당
힐데스하임의 출발은 800년대에 지은 예배당인데, 오늘날 대성당(Hildesheimer Dom)이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황태자가 성물함을 가지고 이 부근을 지나다가 장미나무에 성물함을 걸어두고 에배를 드렸는데, 성물함이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자 그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다는 스토리를 가졌다. 그만큼 힐데스하임 대성당은 장미나무와 불가분의 관계로, 실제 대성당 안뜰의 장미나무는 1천년 수령을 자랑한다. 2차대전 후 폐허가 된 대성당에서 다시 장미꽃이 피는 걸 본 시민들이 용기를 얻어 도시를 재건하였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Scene 2. 성 미하엘 교회
대성당과 함께 비잔틴 양식으로부터 이어지는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성 미하엘 교회(St. Michaeliskirche)는 거대한 성을 보는 듯한 균형 잡힌 건축미가 압권이며, 건축 시기는 대성당보다 앞선다. 내부 <이새의 족보> 천장벽화는 중세 종교예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성 미하엘 교회와 대성당 모두 베른바르트 대주교가 설계하였고, 그는 도시의 설계자나 다름없다. 두 건축물은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귀중한 사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Scene 3. 브륄 거리
중세 반목조 건물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브륄 거리(Brühl), 그리고 그 옆 골목인 힌터 브륄 거리(Hinterer Brühl)다. 이 부근에는 1천 채 이상의 목조 가옥이 존재했다고 전해지는데, 전쟁 중에 기적적으로 화를 면한 수십 채의 중세 건축물이 좁은 골목에 남아있어 낭만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힌터 브륄 거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5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 브륄 거리와 힌터 브륄 거리가 만나는 광장에는 또 하나의 로마네스크 걸작 성 고데하르트 교회(Basilika St. Godehard)가 있다.
Scene 4. 마르크트 광장
고딕 양식의 시청사를 포함하여 각기 다른 시대의 중세 건축물이 둘러싼 아름다운 중심 광장이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역시 2차대전 이후 재건한 곳인데, 처음 복원 시에는 현대식 빌딩과 주차장이 되어 전통적인 모습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전통을 향한 시민의 향수에 힘입어 1980년대에 2차 복원을 진행해 현대식 빌딩을 허물도 중세 길드홀을 되살렸으며, 이미 지은 건물들도 광장에 접한 파사드는 중세의 모습을 되살렸다. 이미 복원이 끝났고 사유재산인데 시민의 의지로 전통적인 풍경을 되살린, 독일의 수많은 전후 복원 사례 중에서도 가장 특출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대성당 안뜰의 장미나무는 꽃을 피운다. 장미가 준 희망, 장미가 되살린 도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영예가지 얻은 힐데스하임을 걷다보면 바닥에도 수많은 장미 그림이 등장하며. 장미를 따라 걸으면 주요 관광명소가 모두 연결된다.
장미의 이름으로 부활한 도시를 산책하듯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장미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가이드가 되어주는 셈이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