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뤼베크
독일 국적 항공사의 이름은 루프트한자. 의역하면 '한자항공' 정도 되겠다. 대체 '한자'가 뭐기에 메이저 항공사 이름이 되었을까? 한자(die Hanse; 저지독일어로는 Hansa)는 13~15세기경 북해와 발트해 해상무역을 장악한 부유한 상업도시의 연합이다. 흔히 한자동맹이라 부르는 이 집단은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발트3국, 북유럽 등 무한히 확장되어 맹위를 떨쳤고, 신성로마제국 등 봉건국가에 속하지 아니하고 보호도 받지 않은 사실상의 독립된 도시국가와 같았다. 직접 군대를 조직하고 외세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니까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들의 이름이 '한자'였으니 '한자항공'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수긍 된다.
한자동맹에 공식적인 수도는 없지만 사실상 한자동맹의 수도와 다름없는 가장 주도적인 도시로 '한자의 여왕'이라 불린 뤼베크(Lübeck)는, 신항로 개척 후 해상무역의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쇠퇴한 한자동맹에서도 마지막까지 독립성을 잃지 않고 부유한 세력을 자랑하였다. 지금도 그들의 부강한 영예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홀슈텐문
뤼베크는 강 위의 섬 전체가 구시가에 해당한다. 강이 해자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스스로를 보호했기에 오랫동안 안전 속에 번영을 누렸다. 그 관문인 홀슈텐문(Holstentor). 첫인상은 매우 육중하다. 이런 성문이 막고 있으면 함부로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더 이상 영토 침공의 위험이 사라진 뒤 도시가 계속 확장됨에 따라 성벽을 허물기로 했는데, 그래도 홀슈텐문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수백년 간 도시를 지켜준 수호신과 같기 때문에. 그런데 어찌나 육중한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해 지반이 일부 침하하여 살짝 기울어 있다고 한다.
Scene 2. 대성당
그렇다면 뤼베크가 한자동맹을 이끌만큼 강력한 상업도시로 성장한 건 언제부터일까? 독일 북부의 여러 도시가 그러하듯 뤼베크도 하인리히 사자공의 덕을 보았다. 사자공이 개척한 무역도시. 뤼베크 대성당의 사자상이 바로 사자공을 기념한다. 대성당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가 되었으며, 높이 115m의 탑을 세운 전형적인 벽돌 고딕 양식이다. 뤼베크는 대성당처럼 붉은 벽돌로 만든 중세의 건축물이 중요한 랜드마크가 된다.
Scene 3. 성령 양로원
5개의 탑과 5개의 박공. 그리고 붉은 벽돌 고딕. 뤼베크의 건축물로서는 가장 유니크하면서 상징적인 성령 양로원은, 그 이름대로 실제로 양로원(요양병원)으로 1286년에 만들었다. 부유한 도시 뤼베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빈곤한 약자를 위한 복지시설이었던 셈. 부유한 상인이나 시의원의 기부로 운영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시설 중 하나로 꼽힌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요양병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입구 홀까지만 개방되어 있고, 내부 출입은 금한다.
Scene 4. 시청사
붉은 벽돌이 사방에 가득한 뤼베크에서 더 눈에 띄는 검은 벽돌. 그리고 한자도시 특유의 뾰족한 탑과, 파트너 도시의 문장(紋章)으로 장식한 시청사(Rathaus)는 고딕 양식의 틀 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치장을 더한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ㄱ자 모양의 시청사 안뜰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오늘날에도 약간의 푸드트럭이나 가판매가 들어서 소소한 시장 풍경을 만든다.
Scene 5. 성모마리아 교회
뤼베크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북해와 발트해 연안 기존 한자도시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붉은 벽돌 고딕 교회의 모체가 되는 곳. 성모마리아 교회(St. Marienkirche)다. 이런 식으로 거대한 교회를 견고하게 지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이후 비슷한 건축양식이 유행하였고요. 성모마리아 교회를 롤모델로 만든 교회만 70여곳이라고 하니 "모체"라는 말을 써도 됩니다. 탑의 높이는 124m. 내부 층고는 세계의 고딕 교회 중 가장 높은 38.5m에 달한다. 성모마리아 교회도 2차대전 중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이때 전쟁 중 파손되어 바닥에 떨어진 파손된 종을 그대로 남겨두어 기념물로 사용 중이다.
섬 위에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도시가 무한히 확장될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섬의 면적이 늘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덕분에 뤼베크는 대도시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영향력을 가지고서도 소도시와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바로 이 뤼베크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한자의 여왕'의 클래스를 증명한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