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독일 소도시 여행 - 파사우 (完)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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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독일을 여행하면서 111개의 도시를 다녔다. 만약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고르라면, 이 시리즈의 프리퀄 고슬라르를 꼽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지로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보았던 그 순간과 찰나의 풍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고 하면, 독일의 석학 훔볼트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개의 도시" 중 하나로 꼽은 파사우(Passau)를 빼놓기 어려울 것 같다.


일단 파사우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소도시다. 그런데 독일에 아름다운 소도시는 셀수없이 많다. 내 기억에 파사우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내가 보았던 그 순간과 찰나의 풍경 때문이다. 그 풍경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Scene 1. 파사우 대성당

중세 시대에 파사우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교구가 설치되었던 종교적 중심지였고, 사실상 종교국가의 형식을 취한 제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발전하였다. 파사우 대성당(Dom St. Stephan)이 핵심이었고, 대성당이 화재로 무너지자 1600년대 후반 다시 지어 오늘날과 같은 크고 화려한 바로크 성당이 되었다. 내부의 장식과 예술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고 격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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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 대성당 내부


Scene 2. 오버하우스 요새

파사우 구시가지에서 강 건너 절벽 위에 큰 요새가 자리잡고 있다. 오버하우스 요새(Veste Oberhaus)는 중세 파사우 대주교가 군사적으로 보호 받으며 거주한 성이었다(대성당을 새로 지은 후에는 대성당 근처에 새로운 주교궁이 생겼다). 견고한 요새의 성채를 지금도 확인할 수 있으며,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특히 여기에서 강 건너 파사우 구시가지의 전망이 그야말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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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오버하우스 요새 | 우: 요새에서 보이는 전경


Scene 3. 구 시청사

하천변에 높은 시계탑과 르네상스 양식의 홀이 펼쳐지는 것이 베네치아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구 시청사(Altes Rathaus)는, 그 자체로도 눈에 띄는 중세 건축물이고 내부의 중세 홀도 가이드투어로 방문할 수 있다. 또한, 주변의 건축물과 함께 강변의 풍경을 완성하여 구시가지의 정취가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구시청사01.jpg 구 시청사

구 시청사 시계탑에서 역사적으로 도시가 물에 잠긴 홍수 재해의 수위를 기록해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시기가 기록적인 홍수 직후였다. 1500년대부터 시계탑에 표한 침수 수위보다 더 높은 침수 자국을 보니 역사상 최악의 홍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방문 당시에도 침수지 특유의 비린내가 느껴지는 골목이 여럿 있었고, 일부 건물은 창문이 깨진 모습이기도 했다. 물은 다 빠졌고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지만 아직 일상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이른 듯했다.

구시청사02.jpg 시계탑에 기록된 홍수 수위


Scene 4. 드라이플뤼세에크

파사우가 홍수로부터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도시는 강과 강이 만나는 사이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심지어 다른 강이 같은 지점에서 만나 세 강이 파사우를 끼고 흐른다. 바로 그 세 강이 만나는 지점을 드라이플뤼세에크(Dreiflüsseeck)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세물머리' 정도 되겠다. 드라이플뤼세에크는 풍경을 즐기기 좋은 강변의 공원이다. 그런데 홍수 직후, 아직 토사를 외부로 반출하지 못해 드라이플뤼스에크에 임시로 쌓아둔 상태였다. 축축한 모래사장이 생겼다. 그런데 파사우 시민들은 홍수 현장에서 걷어낸 토사를 마치 진짜 해변 모래사장처럼 즐기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기타 치며 피크닉을 즐기고, 공을 들고 나와 아이와 놀고, 신발을 벗고 바닷가를 걷듯 천천히 걷기도 했다. 아이는 아직 흙탕물 빛깔의 강물에 발을 담궈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비록 재해를 입었지만, 그리고 아직 그 재해의 복구가 끝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드라이플뤼세에크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며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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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 드라이플뤼세에크

자연재해로 생채기를 입은 이들이 현실을 긍정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것은 몹시 신기하고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하필 내가 방문한 시기가 홍수 직후였기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것은 나에게도 행운이었고,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경험이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내가 독일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현실에 주눅들지 않고 현실을 긍정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강의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 파사우, 그러나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강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강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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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이 글을 끝으로 코너를 마칩니다. 나중에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새 책으로 찾아올 환경이 갖춰지면 다음 페이즈로 독일의 소도시를 다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독일 소도시 여행 1~30편 [바로가기]

독일 소도시 여행 31~45편 [바로가기]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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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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