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월 11일 실시_ 제15대 국회의원선거
1996. 4. 11. 총선
제15대 총선은 1996년 4월 11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제15대 국회의원선거는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하는 선거였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선거를 얼마 안 남겨놓고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후 정계에서 은퇴했던 김대중 전 평화민주당 총재가 정계복귀를 공식 선언한 후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하여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섰습니다. 김대중은 이기택 등 민주당 정치인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신생정당 <새정치 국민회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노무현, 김원기,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등은 김대중을 따라 탈당하면 총선 승리의 가능성도 더 높아질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발전에 악영향을 끼치며 '지역주의'와 '개인 정당화'의 가능성을 높인다며 꼬마 민주당에 남았습니다. 그 결과 총선에서 대부분 낙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부분 나중에 노무현 정권의 주축이 됩니다.
선거 결과는 민주자유당에서 당명을 바꾼 여당인 신한국당이 139석으로 제1당이 되었지만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고, 김대중의 새정치 국민회의도 겨우 79석을, 꼬마 민주당은 전국구로 15석밖에 못 얻었습니다. 단독으로 원내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주의 탈피와 진보적 개혁정당을 표방한 민주당은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오히려 놀랍게도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50석을 획득하여 나름 선전했습니다.
국가부도 사태의 발발
선거가 끝난 후 1년도 채 안돼서 IMF 국가부도를 몰고 온 한보철강 부도 사태가 발생했고, 여기에 여당 의원, 청와대 비서진, 전직 장관 등 여야 의원 수십 명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개입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김영삼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97년 5월 김현철은 구속됩니다. 급기야 한보철강 부도에 이어, 삼미그룹과 한신공영, 진로, 대농, 쌍방울, 해태 등 총 12개 대기업의 연쇄부도 사태가 일어나면서 우리나라는 이른바 'IMF사태'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대기업의 연쇄부도와 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화, 국가신용도 추락, 외환위기의 발생으로 환율은 급등했으며 결국 우리나라는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경제주권을 상실하고 IMF의 경제 '신탁통치'에 들어갑니다. IMF가 주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해고사태와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이 헐값에 외국자본에 넘어갔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는 비록 단시일 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IMF 체제를 벗어났지만 경제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몰락,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가속화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