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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06. 2020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국회의원 선거

2008년 4월 9일 실시 _제18대 국회의원선거


"모든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 제임스 레스턴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제18대 국회의원선거는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2008년 4월 9일 실시되었습니다.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권은 2월 25에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대선이 끝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총선이 실시된 것입니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10년 만에 진보 정권에서 보수진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직후였지만 국회는 여전히 이제는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이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얻었다가 재보궐 선거에서 잇달아 패하면서 과반의석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의회 다수당은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을 거쳐 헤쳐 모인 <통합민주당>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새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에 표를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압승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던 터라 200석 이상의 대승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대선에서 큰 격차로 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은 낮은 지지율과 당내분을 수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이를 위해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당을 통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하며 분위기 쇄신을 도모했습니다만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견제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신들에게 표를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18대 총선 선거지도

한편 이번 총선에는 여러 신생 정당이 많이 생겨나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창당한 <자유선진당>을 비롯해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 친박연대 등이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18대 총선에 즈음해서 많은 정당이 새로 생겨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기원은 바로 한나라당의 17대 대선 후보 경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던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지지 세력은 대선 승리 후에도 끝내 그 앙금을 해소 하지 못하고 친박계와 친이계로 나뉘어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마침내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가 친박계 중진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이른바 '공천 학살'로 폭발했습니다. 공천에서 탈락한 대표적 친박 의원인 서청원, 홍사덕 의원 등이 '친박연대'라는 오로지 정당을 급조해 출마했습니다. 심지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도 '무소속 친박연대'라는 표현을 쓰는 후보도 출현하는 등 한나랑의 공천 파동으로 여권 분열이 현실화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더해 대선에서 일정 정도 득표율을 확보했던 문국현 대표의 창조한국당도 이번 총선에 적극 참여하는 등 이번 총선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하여 무려 17개 정당이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국회의원 선거 사상 최다 선거참여 정당 기록이었고, 이 기록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 무려 21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다시 깨지게 됩니다.


이렇게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정권교체에 성공한 기세를 몰아 선거 압승을 기대해 볼수 있었던 집권 여당은 공천과정에서 무리수를 두어 분열하고 맙니다. 이른바 '친이계'와 '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폭발하고, 결국 공천 결과에 불복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탈당하여 <친박연대>라는 신생정당을 결성해 따로 선거에 나섰던 것입니다. 





뉴타운 바람

집권 여당 내부의 계파 갈등이 없었더라면 18대 총선은 2006년 지방선거부터 시작한 보수 정당 전성시대의 최고 절정을 기록할 수도 있었습니다.  보통 대체로 보수 정당은 정치의식이 높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큰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번 18대 총선에서 보수정당은 수도권에서도 뉴타운의 바람을 타고  크게 승리했습니다. 총 48석이 걸린 서울에서 한나라당은 40석을 차지했고 인천, 경기에서도 41석을 추가했습니다. 수도권 당선자들은 대부분 친이계 인사들이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수도권 111석 가운데 고작 26석만을 건지는 대참패를 당했고  바로 이 18대 총선이 2000년부터 2020년 사이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중에서 유일하게 보수정당이 수도권에서 이긴 선거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이른바 뉴타운 공약 덕분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여당 후보가 뉴타운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노무현 정권 말기 엄청난 부동산가격 폭등을 목격한 많은 유권자들은 자신들도 그 개발이익의 수혜자가 되기를 기대하면 여당에게 표를 몰아 주었던 것입니다. 





공천파동과 계파 갈등의 폭발


이번 선거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공천 파동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공천파동으로 각 정당의 후보자가 늦게 결정되면서 후보자 검증도 부실했고, 후보자 간 정책경쟁이 실종되었습니다. 선거 결과 정권교체와 뉴타운 열풍에 힘입어 내심 200석 이상을 기대했던 한나라당은 153석을 확보하여 원내 과반수를 겨우 넘겼습니다,  그러나 공천 파동으로 갈라져 나온 친박계를 범여권으로 분류해 보면 이번 총선에서 보수 정당이 최대 183석을 얻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한나라당(153석)+친박연대(14석)+친박 무소속 연대(12석)+기타 한나라당계 무소속(4석)) 이렇게 최대 183석입니다. 그 외에도 충청권에서 18 석을 차지한 자유선진당도 넓은 의미에서는 범여권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청권 의원들의 경우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민주당계 성향 의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총선 이후 몇차례의 재보궐을 치른 뒤 이어진 정계개편 결과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도 합당에 성공하고 그 결과 2012년 시점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의석은 176석에 달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은 겨우 8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지난 대선 패배의 충격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통합민주당의 이 패배는 역대 제1야당이 기록한 최대의 패배였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가 제15대 총선에서 79석을 얻은 이래로 최저 기록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새정치국민회의 때는 야권이 분열된 상황이었고 여소야대 구도는 유지한 상태였지만, 18대 총선 때는 야권은 분열을 거쳐 이미 통합된 상태였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자신들의 지역 기반에 출마한  호남 무소속 의원 6명과 이후 민주당에 복당하게 되는 강원 속초·고성·양양의 송훈석 의원까지 합쳐도 88석이었으니 제1야당의 총선결과로는 역대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 중도정당인 창조한국당 3석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5석을 합쳐도 범야권은 96석에 불과해 개헌저지선에도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대 선거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지난 대통령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져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였다는 점입니다. 이번 선거 최종 투표율은 46.1%로 나타나 역대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통털어 가장 낮은 투표율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번 선거부터 우리나라 선거 사상 최초로 투표한 유권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투표참여 장려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해 더욱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번 선거부터 투표를 마친 선거인에게 국공립 유료시설 이용요금을 할인해 주거나, 교통불편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과 노약자 등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투표참여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지만 투표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게 이루어 질 수 있겠지만 17대 대선에서 이미 조짐을 보인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그 한 가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정부 출범 과정에서 드러난 집권층의 부도덕성에 대한 실망, 18대 총선 과정에서도 공천 파동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양상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선거를 통한 정치참여를 외면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끝으로 이명박 정권이나 보수 정당 한나라당에 대한 인기는 내리막길로 접어 듭니다. 18대 총선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발생했고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강경한 진압으로 일관하면서  대선 직후 국민들이 보여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와 기대는 사라졌습니다. 18대 총선 당시 50%대를 기록했던 이명박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는 1달 후에 20%대로 추락하더니, 촛불시위가 정점에 달한 6월 초엔 심지어 10%대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많은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국민들은 새 정부가 출범한지 채 1년도 못되어 실망감을 감출수 없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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