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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Jan 12. 2019

최초의 양원제 국회를 구성하다

1960년 7월 29일 실시 _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4월 26일에 마침내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자 국회는 즉시 3.15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 내각책임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합니다. 정국 수습을 책임지던 허정 과도내각은  곧이어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발의했고 이 개헌안이 1960년 6월 15일 국회를 통과하여 우리나라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제2공화국에서는 독재 권력의 전횡으로 얼룩진 이승만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권력 균형과 상호 견제에 입각한 의원내각제가 도입됩니다. 국회도 새 국회의원선거법이 제정되어 1952년 처음 헌법에 문헌상으로 규정되었으나 실제로 시행되진 않았던 양원제 국회가 제5대 국회에서 처음 도입됩니다. 중앙선거위원회도 제2공화국 헌법에 따라 처음으로 헌법상의 독립기관으로 격상되어 제5대 국회의원 선거를 관리하게 됩니다.

김두한 선거공보와 윤보선 선거공보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우리나라 총인구수는 21,526,374명이었고, 선거인수는 11,593,432명이었으며, 투표자수와 투표율은 민의원 선거에서 9,778,921명으로  84.3%, 참의원 선거에서는   9,747,688명 투표에  84.1%를 기록했습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전 선거와 달라진 점을 살펴보면, 선거연령은 만 21세에서 만 20세로 낮아졌고 2005년 만 19세로 바뀔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또 투표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1시간을 단축했습니다. 후보자 등록을 방해하는 데 악용되던 후보자 추천장 제도는 폐지되고 처음 부재자 투표제도가 도입되어 개표 시 일반투표와 함께 개표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하여 투표참관인은 후보자별 1인에서 4인으로 늘렸고 투표소에서 사고 발생 시 촬영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투표용지에도 처음으로 일련번호가 도입됩니다.

선거유세를 듣는 군중들


처음으로 도입된 양원제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양원 모두 국민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의원을 선출했으나 민의원은 선거구별로 1인을 뽑은 소선거구제였으나 참의원은 서울시와 각 도단위를 선거구로 하여 선거구별로 2~8명까지 선출하는 대선거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민의원 선거는 하나의 투표용지에 1명만 표시하는 단기명 투표방식이었던 반면에 참의원 선거는 의원정수의 2분의 1까지 표시하는 제한 연기명 투표방식이었습니다. 민의원의 임기는 4년인 반면에 참의원은 3년마다 정수의 2분의 1을 교체하도록 하여 6년 임기의 의원 절반과  3년 임기의 의원 절반으로  득표순에 따라 구성되었습니다.

제5대국회의원 선거 투표용지(좌: 참의원선거, 우: 민의원선거)

선거는 보수정당인 민주당과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혁신세력의 대결로 펼쳐졌으나 결과는 보수세력인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나 민의원, 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수를 확보했습니다.  참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서울을 제외하고 다른 9도에서 모두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제2공화국에서는 새로운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지명하고 민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총리가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1960년 8월 12일 양원 합동회의에서 민주당 구파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윤보선은 장도연을 총리로 추천했으나 민주당 신파가 지지하는 장면에 1 표 차이로 밀려 장면이 제2공화국의 새로운 총리로 새 정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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