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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세희 Feb 02. 2020

파괴의 추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영화 서던리치: 소멸의 땅 리뷰


 진부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주제의식은 난해하기만 하다. 창작자는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무언가를 관철하려고 하나 그 의미를 뚜렷이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평론가에게는 극찬을 받지만 대중에게는 외면을 받는 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불친절한 안내서를 손에 쥐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놈의 예술이 뭐길래?


 그에 비교하자면,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비교적 친절한 안내서이다. 영화를 장악하고 있는 한 가지의 주제의식을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직설적으로 내던진다. 이 영화의 장르는 미지(未知)에서 오는 공포를 배경으로 하는 코스믹 호러이지만 주제의식을 중점으로 감상한다면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관객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미지의 장소 쉬머는 국립공원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여러 생물들이 쉬머에 의해 하나의 새로운 유기체로 탄생한다는 설정이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뒤틀린 일대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조잡하고 엉성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굴절'한다는 특성답게 굴절을 시각화한 것과 같은 프리즘 효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상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각적으로 추상적이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몇몇 장면들은 그저 감탄스럽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자멸은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벤트리스 박사는 리나에게 인간은 자살이 아닌 자멸을 하며, 자멸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리나의 남편인 케인은 리나의 외도 사실을 알아차린 뒤, 쉬머 탐사 임무에 지원한다. 리나를 제외한 후발 탐사대원들 또한 모두 하나 같이 기구한 사연으로 삶의 의지를 잃고 임무에 지원한다. 쉬머를 조사하는 임무가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임무에 지원한다. 본성에 따라 자멸을 택한 것이다. 반면, 주인공 리나는 케인이 겪은 일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탐사대에 합류한다. 그녀는 자멸하지 않고 쉬머에서 귀환한 유일한 생존자다. 이는 리나가 본성에 따라 자멸에 귀결하지 않고 그를 극복해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는 의과대학의 세포/암 병리학 교수인 리나가 암세포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리나에게 세포에게 프로그래밍되어있는 본능인 자멸에 대해 설명하는 벤트리스 박사는 암 환자이다. 그리고 쉬머 속에서 끝없이 증식하는 돌연변이 생명체와 외계 생명체의 복제는 암세포의 특징과 닮아있다. 이처럼,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메타포를 통해 암세포에 대해 다룰 뿐만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도 이 주제를 다룬다. 단지, 이 암세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표면적인 내용만으로 알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표면적인 이야기가 미지의 장소, 그리고 그 곳을 탐험한 한 인간의 이야기라면 암세포라는 주제의식을 중점으로 해석한 영화의 내용은 어떨까? 쉬머에 있던 이들의 팔에 새겨진 무한대 기호로 보이는 뱀 문양의 문신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문신은 탐사대원들이 쉬머에 머무르는 동안 자연스레 생겨나는데, 무한대와 뱀의 상징을 고려해봤을 때 이 문신은 우로보로스를 의미한다. 우로보로스는 무한과 완전을 상징하는 신화 속 존재이다. 즉, 쉬머에 있는 이들은 굴절로 인해 변화하고 있으며 그 표식으로 팔에 우로보로스의 문신이 나타난다. 그러나 문신을 가진 이들은 무한과 완전을 가질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모두 자멸하고 만다. 쉬머 밖으로 나온 리나의 팔에 새겨진 이 문신은 그녀가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이며 그럴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이다. 우로보로스 형상의 문신을 통해 쉬머에서 살아 돌아온 케인이 복제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나는 케인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쉬머의 디멘시아 현상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자세히 보면 케인이 리나와 대면할 때 그는 손으로 가리고 있던 한쪽 팔을 드러내는데 케인의 팔에는 문신이 없다. 쉬머에서 귀환한 케인은 복제로 탄생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리나는 캠코더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혼란스러워하는 케인이 백린탄으로 자멸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계 생명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 그녀는 자신의 손에 백린탄을 쥐고 안전핀을 뽑는다. 찰나의 순간, 리나는 순발력을 발휘해 백린탄을 복제에게 쥐어준 채 등대 밖으로 뛰쳐나간다. 외계 생명체는 쉬머의 중앙부로 보이는 동굴에 불을 옮겨 붙이고 쉬머는 붕괴된다. 리나는 인간의 본성인 자멸을 이용했다. 벤트리스 박사의 말대로, 리나는 이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니까 말이다. 쉬머에서 돌아온 리나는 복제된 케인처럼 물컵에 굴절되는 상이 반대로 나타나지만 그와 달리 물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정신 또한 온전하다. 이것은 그녀 인간과 외계 생명체가 결합된, 무한과 완전의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영화는 복제된 케인과 리나가 서로를 껴안고, 그들의 눈동자에 쉬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오로라가 일렁이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영화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맡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렇게 영화는 결국 뚜렷한 암시를 주지 않고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암세포라는 주제에 대한 관점은 여러 의견이 있으며 그중 무엇이 정답이라고 콕 집어서는 말할 수 없다. '암세포라는 주제의식을 어떻게 영화의 스토리에 결부하였는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경하는 건 리뷰어인 나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일이었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을 관람하게 된 이유는 한 게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지마 감독이 해당 영화를 기억에 남는 SF 스릴러 영화로 꼽았기 때문인데, 딱 그의 취향에 걸맞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플롯이나 분위기가 인상 깊었기에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국내 정식 제목이 왜 이렇게 정해졌는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일전에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이 원작인 서던 리치 시리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원작과는 별개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음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또한 원제(Annihilation)가 영화의 주제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완성도가 높지 않음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소재를 그대로 추상화하여 장르의 색깔에 어우러지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 관대한 태도로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면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여러분을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이끄는 썩 괜찮은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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