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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바언니 Feb 10. 2023

자꾸 넘어지는 노견을 보며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는 연습

2023.01.07  -  눈밭에서 신난 에바 어르신


2023.01.07 - 한파의 날씨지만 집에 들어와서도 눈에서 논다 


작년 말, 알러지와 고혈압, 만성 신부전으로 인해 고생하던 에바는

병원 검사를 받고 처방약을 먹으며 새해 1월은 훨씬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느릿느릿 절뚝절뚝 걷지만 밤새 쌓인 눈 위를 제법 살랑살랑 걸으며

천천히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산책을 즐겼다.


그래서 너무 안심을 했었던걸까.


철푸덕.


어제 새벽, 자다 깬 에바가 뒤척이며 일어나려다가 주저 앉았다.

뒷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앞발에 간신히 힘을 주고 일어나보려 해도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잠시 뒤, 겨우 일어나는가 싶더니 그마저도 몇걸음 가지 않아 미끄러지듯 넘어져 앉았다.


'내 다리가 왜 이러지?'

놀란 나만큼이나 에바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에바의 증상을 폭풍 검색해보니 의심되는 유력한 질병은

사람으로 따지면 루게릭병과 같다는

Degenerative Myelopathy (DM), 퇴행성 골수염증 혹은 척수병증.

뇌와 몸을 연결해주는 척수신경이 퇴행하면서

뒷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근육이 점점 빠지다 마침내 마비로 이어진다는 질병이었다.

보통 뒷다리 한쪽이나 양쪽부터 시작해

심해지면 앞다리까지 영향을 받으며 끝내는 사지마비가 된다는 병.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기에 반려견과 보호자에게 더 잔인한 병이라고 한다.


2023.02.09 - 넘어지고 난 뒤 어리둥절한 표정의 에바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눈물이 났다.


하던대로 신장 수치 조심하고, 혈압약 꾸준히 먹으며 관리하고,

산책 열심히 하면서 콧바람도 자주 쐬면서 병원도 잘 다니고 하면

당분간은 이렇게 느릿느릿 하지만 건강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치료법이 없는 병이 찾아왔다니...

물론 수의사 선생님께 확인을 받아야겠지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름 각오가 되었다는 믿음이 깨지고 문득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났다.


'과연 내가 에바를 오롯이 홀로 케어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에바가 긴 비행을 견뎌내줄 수 있을까'


집주인 분께도 사정사정하여 간신히 함께사는 것도 허락받고

비행기표도 끊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한국에 도착하면 에바에게 필요한 용품도 미리 장바구니에 다 담아두었는데...


일로 바쁘기도 하고 연로하신 부모님과

이제는 아기 아빠와 남편으로서 한 가정을 꾸려 나가느라 정신없는 오빠보다

내가 에바를 앞으로 더 잘 돌볼 수 있다 생각했다.

에바의 생활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필요한 치료를 받는 데에

우리 가족보다는 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바가 장거리 비행만 견뎌준다면, 

남은 견생을 책임지고 돌봐주고 싶었다.

그러면 나중에 에바가 떠나도 덜 미안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데 당장 벌써부터 주저앉고 잘 일어나지 못하다니...


심란한 맘에 반려견 휠체어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배변을 못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하고 있나

블로그와 유투브를 이곳 저곳 들여다보았지만

한번 불안감에 휩싸인 마음은 영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앤디는 잘 지내?"

"앤디는 어제 응급실 다녀왔어."

"아이구... 좀 어때?"

"똑같아..."


최근 큰 수술을 하며 이미 한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13살의 라브라도를 알뜰히 살피고 있는 친구.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가 안쓰럽고 미안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내가 갈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숙연한 선배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밤에 응급실을 다녀올 정도라니 정말 많이 힘들텐데...

그래도 강직해 보이는 친구를 보며

나도 다시 한번 주문을 걸어본다.


불안감에 휩싸이지 말자.

에바가 절대 눈치채서는 안되니.

가장 연약한 순간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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