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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Dec 16. 2021

비건 김치의 달인이 되었다

김치에 젓갈은 필수 재료가 아니더군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 Vegan은 '어디 가서 김치 또한 쉽게 먹을 수 없다'라고 하면, 


"아니 김치는 식물성인데 왜?"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아, 젓갈 때문이겠구나'라고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젓갈 없는 김치를 집에서 담가먹거나 바쁠 때는 검색창에 비건 김치를 찾아 주문해 먹어야 하는 것도 비건의 일상이다. 가족을 위한 '요리' 그중에서도 '김치' 담그기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다른 생산적(?)인 일들에 비해 꽤 헌신적인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일이지만 말이다.



엄마는 고향이 이북인 아버지의 입맛에 맞추어 함경도식 김장을 담그셨다. 주로 배추김치와 동치미 그리고 '보쌈김치'였다. 밤과 대추, 잣을 올린 보쌈김치는 정말이지 작은 보자기를 싸는 것처럼 어린 내 눈에 신기해 보였다. 엄마는 다른 집과 달리 새우젓, 멸치 액젓, 갈치젓 대신에 싱싱한 명태를 사서 양념 속에 엽엽히 넣곤 했다. 어린 나는 김치 맛을 잘 몰랐고, 눈동자가 보이는 명태가 삭아 붙어있는 배추김치를 아버지 밥 위에 놓아드리곤 했다. 그러면 부모님은 효도한다며 나를 칭찬하셨다. 실은 먹기 싫어서 한 행동인데 말이다. 굳이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걸 보면 칭찬이 고팠었나 싶기도 하다.




어느 사이 부모님들은 모두 다 돌아가셨고, 어쩌다 보니 나는 김치의 장인이 되어 있다는 걸 최근 김장을 하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두부며, 엿이며, 장이며 김장이며 참 크게 벌여서 동네 친하게 지내는 아주머니들을 불러 일을 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함께 만든 음식들을 구두쇠 아버지 모르게 잔뜩 들려 보내곤 하셨는데 시골 동네 인심이었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일이었건만 그 또한 참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성장하면서는 타지로 나와 학교에 다니고 직장 생활하고 결혼하느라 살림을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건 엄마가 내던 손맛을 물려받았다는 거다.  만두며, 나물이며, 김치며 마음만 먹으면 척척 해내는 것 또한 엄마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하다 보면 는다는 말이 있는데, 어디 가서 쉽게 뭘 사 먹지 못하다 보니 먹고 싶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만들어 먹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모이다 보니 경험도 쌓이고 이런저런 요리의 창의력도 생기게 되었다. 자잘한 바다 생선들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후 만들어내는 젓갈. 작은 생선들 또한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던 눈동자 있는 생명들이었기에 비건은 역시 먹지 않는다. 게다가 시셰퍼드라는 바다 해양을 지키는 단체들의 조사보고서와 그 실태를 다룬 영화 시 스파 라우시를 보면 인류의 착취로 병들어가고 있는 바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비건 김치의 포인트는 젓갈이 아니면 김치 맛이 없을 거라고 믿는 신념을 뒤집을만한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대체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게 우리에게는 이미 잘 발효된 한국식 간장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건이 되고서 육수 대신 늘 써온 채수가 있다는 거다. 채수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일단 다시마와 표고버섯이 주재료다. 김장은 특별하니까 여기에 대파 뿌리, 달큼한 가을 무 조각을 더 넣어 푹 끓여내어 국물을 준비했다. 깊은 단 맛을 위해 말랑말랑 연시도 준비했다. 특히 이번 김장에는 스님들이 사찰에서 활용하신다는 연근도 준비했다.  금방 먹을 김장김치를 위한 찹쌀풀 대신 주로 잘 지어먹는 현미찹쌀밥을 갈아서 사용했다. 불린 고춧가루에 이 모든 재료를 섞어서 한두 시간 불려두면 그냥 찍어 먹어도 될 정도의 좋은 맛이 나지만, 최근 핫하게 떠오른 식물성 조미료 연두를 조금 넣어도 괜찮다.



최근 들어 '김치'가 자기네 전통식품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주장을 중국이 펼친 적도 있지만, '김치'는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소울푸드 아닌가 싶다. 오래전부터 김장 담그는 일이 집안의 큰 행사로 여길 만큼 중요한 일로 여겼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새삼 나이 들어가며 확고히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 글 쓴다, 학교 다닌다. 일한다, 애들 학원 알아봐야 한다며 엄마가 김치 담근다고 부를 때 가지 않았었다. 가지 않아도 엄마는 얌전히 눌러 담은 김치통을 딸네 식구들 먹으라고 내어주시곤 했다. 당연한 듯 받아먹던 그 '김치'를 내가 담아 이제는 내 자식 잘 먹으라고 속부터 꼭 꼭 눌러 채워 담아 건네준다.  '내리사랑' 이란 말도 이제야 확실히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 내 손으로 김장을 담근다는 것은 이제 확실히 철이 들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구나'

'이제 확실히 어른이, 아니 잘 늙어가고 있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왼쪽 : 무우채와 버무린 김장 배추김치 속의 자태, 오른 쪽 : 배추김치, 총각김치 저장할 때는 우거지를 덮어 국물에 잠기도록 꼭 눌러줘야 한다는
왼쪽 : 김장용 채수 우리는 중, 여기에 한국식 간장을 약간 섞는다, 오른 쪽 : 보면 볼수록 채소들 색깔 참 예쁘다
왼쪽 : 말랑말랑한 연시는 껍질을 벗겨 미리 준비, 오른 쪽 : 불려놓은 현미 찹쌀로 죽 끓이다가 사놓은 찹쌀가루를 섞는다. (형편껏 있는 재료 활용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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