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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an 21. 2022

빵 하나로, 즐거운 인생

에콘의 비건 무화과 케이크를 마주하며 든 생각들


내 별명은 빵순이


맘모스 빵, 단팥빵, 곰보빵, 슈크림빵, 그리고 '파운드케이크', 어릴 때 좋아했던 정감 가는 빵들의 이름이다. 다 좋아했지만 그중 할아버지 두고 드시라고 특별 관리(?) 들어가는 '파운드케이크'가 특히 더했다. 묵직하고도 포근한 식감이랄까. 살짝 건포도와 호두가 씹히는 데다 달콤한 투명 시럽이 코팅된 귀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은 늘 아쉬웠었다. 심지어 어느 날인가는 할아버지방에 스며들어 몰래 훔쳐 먹고 나온 기억이 다 난다. 도벽까지 있는 밥 잘 안 먹는 말라깽이 소녀였건만 성장해 이제 잘 나이 들어가며 오늘을 잘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내가 한때 살았던 시골 동네 엄마들처럼 내 엄마 역시 큰 살림에, 밭일에, 늦게 태어난 동생까지 온종일 노동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엄마는 생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고도 능숙한 살림 솜씨로 집과 주변을 빛나게 하는 분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당신만의 꽃밭을 가꾸곤 했는데, 꽃과 함께 하는 그 시간만이 유일한 자기만의 휴식 시간일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 때 빵집 주인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입시 준비로 지쳐있던 때라서 그랬을까? 공부 얘기가 아닌 빵집 주인이 되고 싶고, 될 거야 라는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마치 미지의 신세계를 꿈꾸는 듯한 표정들이 되었다. '내가 정말 예쁜 빵집 주인이 되면 너희들 놀러 오면 좋겠다' 등 등, '아름답고 맛있는 빵을 만들거라'는 둥, 참 막연히 던져본 말일 뿐이었을 텐데 모두들 한 순간 행복해했었다.  


2009년 1월부터 동물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일체의 간접적 동물 착취로부터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들어왔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베지테리언으로 살아왔고, 요가와 명상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아힘사 Ahimsa' 철학을 접하다 보니 나름 진보한 마음의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때 제일 큰 걱정거리는 그 맛있는 빵과 케이크들을 영 먹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거였다. 빵과 케이크를 만들려면 의례 우유와 달걀, 버터 등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걸로 알고 있던 터라 지례 포기를 떠올리게 된 거였다.

 

비건 빵, 혹은 비건 라테와 함께 하는 홈 카페

카페 전전 글쓰기 족의 궁여지책


모던하거나 엔틱 하거나 아님 그냥 느낌 있는 접시에 담긴 달콤하고 아름다운 케이크 한 조각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향 좋은 커피까지 함께라면, 인생 뭐 더 바랄 게 있을까 싶다. 다정한데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벗과 함께 하는 카페의 시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아쉬운 점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후 우리나라에 우후죽순처럼 비건 베이킹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오늘날 현재는 무수히 많은 비건 빵들, 아니 비건 빵집, 비건 식당, 비건 주점, 비건 카페들이 생겨났다. 불과 2000년 초만 해도 '비건'은 고사하고 '베지테리언'에게 조차  불모지와 다름없던 우리나라 현실이었다. 비건 관련 글을 쓸 때면 자연스레 언급되지만, 비건 비즈니스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동물에 대한 착취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환경과 윤리적 측면을 위해서도 물론이지만 케이크를 사랑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년이 넘었으니 나름 비건으로서의 시간이 길다면 긴 편에 속한다(비건이 된 기간을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요즘은 조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비건식보다는 자연식물 식 쪽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즐거움을 위해 가끔 내는 아주 달콤한 시간은 그대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요즘 같은 팬데믹의 시대에 어울리는 홈카페, 즉 방구석 카페를 애용하는 것이다. 주로 오전 무렵 글을 쓸 때면 비건 빵 한 조각(?)과 함께 하는 차 한잔의 시간을 즐기곤 한다.

왼쪽 : 에콘의 비건 무화과 파운드, 오른쪽 : 에콘의 비건 찹쌀 도우넛

멋있고 맛있는 에콘의 비건 빵


그러던 중 브런치를 통해 만난 에콘의 빵이었다. 이상한 건 수많은 비건 케이크들을 마주했을 때 갖지 못한 생각들이 에콘의 케이크 앞에서 떠오르는 거였다. 향수를 불러오는 느낌의 맛이랄까?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 전 할아버지의 파운드케이크를 훔쳐먹던 얘기를 끄집어내 글로 쓸 수 있었을까 싶다. 검색창에 '에콘 빵'을 치고 들어가면 이런 설명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ECONN(eco connect)의 vegan빵으로 환경과 연결된 삶을 실천할 수 있어요.'라는. 애당초 편리와 기능의 측면에서 열어놓은 '브런치 글쓰기 플랫폼'이었는데 그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꽤 특별한 경험이란 생각이 든다.


마침내 특별한 무화과 파운드케이크의 시간을 맞이했다. 에콘의 케이크에는 크림이 얹히지 않았다. 빵 베이스는 현미와 우리밀인데 적당히 묵직하고 부드러운 바로 그 '파운드케이크'의 맛이 난다. 장식으로는 무화과가 다인데 빵 속에 향긋하게 씹히는 말린 무화과도 적당히 달다. 빵 표면에서는 코팅된 메이플 시럽 향과 시나몬 향도 났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비건 라테와 함께 하는 홈카페의 시간, 순삭의 유혹을 참아내며 음미를 했다.


이렇게 맛있고 향기로운 비건 빵이라면, 이렇게 완벽히 평화로운 의도의 비건식들과 그걸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Go Vegan!, 먹히거나 죽임 당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없으니까요


달걀로도 고기로 쓸모없을 수평아리들을 태어나자마자 감별해 분쇄기에 갈아버리거나, 젖이 돌기 시작한 얼룩소들을 공장식 회전판에 올려놓고 자동 기계시스템으로 거칠게 우유를 채유하는 일 따위 말이다.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 송아지의 입에 쇠로 만든 입마개를 채워 모유를 못 먹게 하거나 쓸모없어질 어미소를 도살장으로 보내버려 동료 소 옆에서 목을 쳐 버리는 등의 무자비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들, 이 모든 행위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와 에너지가 결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에콘의 에코 코넥트한 포장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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