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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Mar 18. 2022

감정 상하기 전 요가 <번외>

프롤로그 : 보기보다 화가 많은 사람입니다

보기보다 화가 많은 사람입니다.


  숙이고, 펴고, 비틀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웬만해선 감정의 동요 없이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는 수련자 같다는 말을 듣곤 했지요.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머리에 열이 많아서 인삼도 받지 않는 사람,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더 소심 해지는 사람, 한동안 연락이 뜸해 그리워진 벗에게 먼저 전화 거는 일에도 망설임이 필요한 사람, 일희일비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뿌리 깊던 ‘나무 자세’가 몹시 흔들린다면, 불안한 감정이 외부에서 들어와 몸과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다운 독 자세’에서 왼쪽 손목이 불편하다면, 왼쪽 손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예요. 소심한 사람들, 아니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의 감정이 요동칠 때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감정에 휘둘리고 난 뒤에 남는 후유증은 고스란히 제 몫이 되곤 해요. 그래서 저는 감정이 사나워지려고 하거나 주위에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있을 때, 요가 매트 위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쯤에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짚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감정 상하기 전, 요가》로 제목을 정하고 퇴고를 해나가다 보니 감정 상하기 전이 아니라 이미 감정이 상해서 온 수련생들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더는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준비 없이 치고 들어오는 감정 때문에 괴롭고 힘들다는 걸 경험했기에 작은 제 요가원의 문을 두드렸던 거지요. 사실 이 책 속 제 얘기들도 다르지 않고요. 감정 상하는 일들은 느닷없이, 만만치 않은 상황과 상대로부터 닥쳐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선생님, 목요일 저녁부터 행복해져요.”

직장 여성 A의 말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아마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잊었겠지만, 겨우 주 1회 시간을 내어 수련하러 나와야만 했던 그녀의 한 주가 어땠을지 짐작되고도 남는 한마디였어요. 덕분에 은근히 감정적인 선생인 저는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 줘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제 마음은 어느새 ‘사랑’으로 채워졌지요. 보통 요가 수련을 마치면 요가원에 올 때와 딴판이 되어 나가곤 해요. 저는 그저 그들이 90분 동안 호흡할 수 있게 돕고 몸의 움직임을 살피게 하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에요.


  제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쉼표를 찍으라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책의 제목은 ‘더 이상 감정 상하기 전, 요가’가 적당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봅니다. 좋다는 걸 알면서도 하기 싫은 일은 참 많아요. 꾸준히 수련의 끈을 이어가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죠.


  좋은 기회로 샌프란시스코에 몇 년간 살게 되었고, 그곳에 머물던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요가 수련을 했지요. 그리고 2008년에 한국에 들어와 그해 3월부터 수련 지도와 수련을 해왔으니, 나름 긴 시간이 흘렀네요.


  수련하면 할수록 숨 쉬는 것, 먹는 것,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 잠자는 것, 소비하는 것조차 ‘요가’와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가 매트 위에서 흘리는 땀과 세상이라는 매트 위에서 흘리는 땀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권위 있는 요가 철학서 《바가바드기타》 제6장에서, 힌두인들의 위대한 신神인 크리슈나 Krishna는 요가가 뭐냐고 묻는 제자 아르쥬나 Arjuna에게 요가의 의미를 ‘고통과 비애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요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간혹 수련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곤 해요.


  “선생님, 요가로 뱃살을 뺄 수 있을까요?”

  “저는 몸이 너무 뻣뻣한데 요가를 하면 유연해질 수 있을까요?" 그럴 때 저는

 “요가만으로는 뱃살을 빼기 힘들고, 몸이 뻣뻣하기 때문에 요가가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해요. 평소에 너무 흔히 들어 식상하기까지 한 ‘물질 만능 시대’를 넘어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예요. 자본주의적 가치 추구와 문명의 힘이 인류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함정을 만들었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요가는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능동적인 휴식’입니다. 요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해 찍는 ‘쉼표’입니다. 요가는 몸의 뱃살보다 ‘정신의 뱃살’을 우선합니다. 이 책은 빼어난 요기의 수련 지도법이 아니에요. 드라마틱한 성장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지극히 감정적인 한 사람이, 자신의 결대로 수련해나간 삶의 기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감정’은 억누르고 다스리려고 하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기다려줄 때 지혜로워진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호흡과 함께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달래며 빛이 있는 쪽을 향해 나아가는 일, 그게 ‘요가 수련’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면 좋겠어요. 더 늦지 않게 이만큼 알아차리게 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몸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 마음이 아플 때 몸도 따라 아파요. 그럴 때면 ‘통증’이 내 영혼의 성소에서 보내오는 신호라는 게 점점 더 또렷하게 느껴져요.


  지금 이 순간, 외로운 섬 우주를 떠도는 별인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내 안에 존재하는 영혼이 머리 숙여 경배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 올린 한 송이 연꽃, 한 송이 우주인 내 앞의 당신과 지구별의 모든 생명체,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한 기척을 보내드립니다.


나마스테.

2021년 봄,

두 손 모아 김윤선 드림

2022년 3월 9일 이후, 마음의 평정심이 잘 유지되지가 않네요. 문득 작년 봄 퇴고를 마치며 썼던 이 글이 떠올라서 번외로 업데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요가 에세이라기엔 사는 이야기에 더 가깝기도 해서 위에 올린 글 속 맨 마지막 행 위로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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