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Jun 08. 2023

담장을 뛰어넘던 그 사람

의심하는 마음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철제 담장을 끼고 카페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근래 들어 본 적이 없는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떤 이가 이제 막 아파트 담장을 넘어 뛰어내린 후 사뿐히 갈 길을 가는 게 아닌가? 7년 전 이 동네로 이사와 살며 처음 본 일이라 그런지 저절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만큼 그리 위협적인 높이의 담장은 아니었다. 옛 단독 집들처럼 깨진 유리병을 담장에 꽂아 절대 넘어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경고가 붙어있지도 않았다. 바쁜 일로 출입구를 찾을 시간이 없으면 뭐 담을 넘어 다닐 수도 있고 뭐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허름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낡지는 않은 편한 옷 차림새였다. 짧은 순간의 스캔, 날카로운 눈매만큼은 눈에 띄었다. 어느새  그는 행인들 무리에 적당히 섞여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를 전혀 신경 안 쓰고 있는 듯 무심을 가장한 채로  나 또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그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그의 눈매에서 섬칫함이 느껴졌다고 해도 내가 그를 살펴서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가끔 이런 내 오지랖에 대해 스스로 피곤함을 느끼곤 한다. 그가 햇빛을 피해 신호등의 그늘막으로 들어섰을 때, 햇빛을 좋아하는 나는 그늘막을 벗어나 서 있었다. 내심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몸을 돌려 내 뒷 쪽으로 와서 서는 게 아닌가. 갑자기 뒤통수가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파트 주민이 아닌 게 분명한 그는 왜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무얼 둘러보았던 걸까? 타깃을 정하러 갔던 것일까? 세상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는 뉴스를 너무 많이 접해서일까? 대체 저 사람이 뭘 했다고 내가 이렇게 바짝 긴장하며 그를 지켜보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정말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심하는 마음은 날개를 단 나비처럼 훨훨 그와 나 사이를 날아다니는 듯싶었다.


막상 둘러보니 관리가 허술한 편이 아닌 아파트란 걸 알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중이었을까? 놀이터에 나와 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다가 간 것일까? 내가 밥 주는 고양이들과 마주친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을 할까? 왼쪽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은 왼 손에는 무엇이 들려있을까? 별게 다 수상해 보이는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 특히 남성들이 많이 나와있던 큰 건물에 이르자, 그는 사람이 없는 반대편 길로 건너서는 계속 같은 포즈로 걷기 시작했다..


왼손과 팔에 치명적인 흉터가 있는 걸까? 손목에 갈고리라도 달려있는 걸까? 약간의 팔자거름이었지만 빠른 걸음이었다. 또다시 마주한 사거리 건널목에 이르자 그는 앞서 가는 평범한 한 남자를 추월하더니 전철역 쪽 길로 건너서갔다. 나와는 반대 방향이었고, 그걸로 나의 미행은 끝이 났다.


그런데 나는 무슨 근거로 그가 범죄자 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일까? 내가 본 것이라곤 그가 담장을 뛰어넘었다는 것과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다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는 그저 우연히 정원이 무성한 아파트 단지 안을  걷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나도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두세 시간이 흘렀나? 카페에서 나오는 길, 아까 그 담장의 사건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적당히 괜찮은 포커스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을 무렵 누군가 '휙' 하고 내 옆을 스쳐서 간다. 아까 본 그 사람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무슨 창틀 자른 것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또다시 담장을 넘어갈 기세였다. 맥이 탁 풀리며 안도와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랬다. 그는 아마도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사는 누군가 의뢰한 작업을 하는 중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그는 시간을 아끼고 싶어서 어서 빨리 그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담장을 뛰어넘어 다녔나 보다. 왼쪽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는 아마도 측량한 종이나 뭐 그런 게 들려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두 번째로 본 그의 옆얼굴에서 고단하게 살아온 삶의 이력이 느껴졌다.


오래전, 태양이 내리쬐는 서울 거리를 걷다가 내가 지고 가는 이 햇빛이 어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끝없이 걷고 또 걸으며 오직 지금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 밝고 당당하고 행복해 보였었다. 빛이 환한 한 낮인데도 나의 세계 안에서는 한 줄기의 빛도 볼 수 없었다. 이상도 하지. 나와는 무관한 어떤 낯선 사람을 눈으로 좇다가 보니 그 끝에서 어렴풋이 어떤 마음이 읽힐 것도 같았다.


최근에 몹시 기대하며 응모했던 어떤 프로젝트가 기대와는 다른 결과로 나타나 낙심한 일이 있다. 세상이 아직도 이 잘난(?) 나를 몰라보는 것 같아 불특정 다수를 향한 원망의 마음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나무 아래에서 나는 스스로 평안해진다. 충분히 자족하며 행복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좋은 음악과 함께 하는 차 한잔의 시간 가끔은 달콤한 비건 케이크 한 조각이 있다면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다.


더불어 내가 누리는 안락한 시간들, 깨끗한 음식들, 언제든 씻을 수 있는 따뜻한 물이 있는 내 집이 있다는 것 또한 고맙고 또 고맙다. 날마다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세계에도 빛이 깃들였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온통 '어둠 속'이라 해도 아주 작은 삶의 한 귀퉁이에서 시작될 어떤 '희망'이라는 '빛'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순간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