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산책로 위에 달팽이가 있다. 아주 가만히 움직이고 있다. 자전거로와 산책로를 나누는 중앙선에서 산책로 쪽으로 약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지점. 자칫 오른쪽 길로 걸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힐 수도 있겠다. 언제나처럼 또 걱정이 된다.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일수도 있을 텐데 유난히 내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어쨌거나 이 또한 시절인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잠시 바라보며 궁리를 한다. '달팽이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그러고 보면 달팽이와의 첫 대면이 지금처럼 담담하지만은 않았었다. 후덥 지고도 축축한 여름 장마 속 고양이 밥을 줄 때였다. 차갑고 미끈하고 물컹거리는 그 무엇이 만져지는 바람에 호들갑스럽게 놀라고 말았다. 달팽이들은 플라스틱 두 부곽보다는 차가운 질감의 자기류 그릇을 더 좋아하는지, 그릇을 바꿔준 날은 어김없이 달팽이님들이 붙어 있었다. 사료 그릇 옆에 물 담은 사기그릇도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까'
'이 세계에 과연 달팽이가 살기에 안전한 곳이 있기는 한 것일까?'
비가 내려서 축축해진 도로가 취향에 맞았는지 자세가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인도 옆 안전한(?) 풀밭으로 옮겨줄까 싶어 풀 끝으로 아주 살짝 건드려봤는데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고집이 대단하게 전해져 온다. 어쩜 달팽이를 위해보겠다는 내 행동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위협을 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갑자기 쏟아져내린 비로 산책 나온 사람들은 적었지만 달팽이는 지금 엄연히 인도 즉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에 있다. 지금 당장 저기 한 참 뒤에서 오는 사람의 발길에 밟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
'하지만 뒤에서 오는 사람이 달팽이를 피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달팽이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해서 옮긴다고 옮긴다지만 만약 그 도중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다 크게 다치게 된다면 달팽이의 짧은 일생은 내 의도와는 영 달라지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달팽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기까지, 아니 설혹 그렇게 가만가만 제 자리걸음만 하다 말지라도, 내가 뭘 어찌할 생각은 접기로 했다. 저기 먼 뒤에서 사람 둘이 걸어오고 있다. 부디 그들의 발길에 밟히지 말기를 바라고 바랄 뿐, 살아있는 동안 취향에 맞는 축축한 길 위에서 행복했기를. 내게는 아주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달팽이에겐 영원으로 느껴질 만큼 그럴듯한 순간을 살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