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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Nov 04. 2023

노을 스크린

2023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우리는 대개 해가 뜨거나, 지는 모습에 감동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 복잡한 인파속에서도 해마다 12월 말이면 일몰과 일출을 맞이하러 여행을 가나보다. 내 경우엔 어디에서건 노을이 지는 모습은 아름답게 다가오곤 했다. 인간의 영역에서는 표현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지는 태양이 머금은 붉은빛이라고나 할까.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파리에서도, 우리 동네 중앙공원에서도, 서귀포에서도 나는 노을에 감동하지 않은 적이 없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위안이 되곤 했다.


  아,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노을의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혼자 떠난 첫 여행지인 뜨갈사리* 테라스에서 보았던 일몰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거대하게 펼쳐진 나만을 위한 노을 스크린이었다. 우붓의 논 풍경이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초록 지평선과 맞닿을 듯 펼쳐진 붉은 노을이 그려내던 웅장한 자취는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아있어 문득문득 추억하곤 한다.


  저 멀리 보이던 삐죽삐죽한 실루엣은 열대 초록 나뭇잎의 끝이었다. 빛의 조화와 함께 잎이 검은 실루엣으로 남을 때, 하늘은 장엄한 붉은빛으로 타들어간다. 그 속에서 구름은 서두르지 않고 소멸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어둠에게 자리를 내주는 빛의 의식에 마음을 내어 준채로 오래오래 서쪽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 우붓의 현지인인 다르요 (Daryo) 가 있었다. 다르요는 내가 머물던 숙소인 뜨갈사리의 총 지배인이었다. 붉은 구릿빛 피부의 둥근 얼굴을 한 그는 키가 큰 편이었다. 웃을 때 드러나는 이가 눈이 부시게 하얘서 좀 놀라기도 했었다. 한 번은 그가 물었다.


 “ 니콜, 당신은 왜 우붓에서만 있나요?”


  “ 여기서 근처로 조금만 더 나가면 스노클링 할 수도 있는 바다도 있고, 해변도 있는데”


 “ 정보가 필요하면 알아봐 드릴 수 있어요.”


  숙소 주변의 로컬과 논 밭 산책, 자주 하늘만 바라보는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일 것이다. 한 마디로 왜 꼼짝 안하고 로컬만 어슬렁거리기만 하냐 는 뜻이었으리라.


  ‘이 여행에서 필요한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는 내 대답을 듣자 그는 즉시 이해하는 듯 했다. 심지어 그는 깊이 공감했으며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군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싫을 리 있을까 말이다. 그는  이런 내 의도를 도와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태도로 뜨갈사리에서의 내 생활을 배려해주었다.


  그곳에서 지내며 유일한 외출이라면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요가스튜디오로 수련하러 가는 거였다. 나는 수련하러 나가는 길, 그는 일찍 출근하는 길 자주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소년처럼 수줍은 미소를 짓던 다르요였다. 밥 먹으러 로비 테라스로 나가다가도 마주치던 다르요. 숙소 램프에 문제가 생겨 로비로 전화를 남기자, 한 걸음에 달려와 고쳐주고 가던 다르요.


  뜨갈사리 옆 호텔에서 증축공사로 소음을 일으켜 내가 방을 옮기고 싶다고 하자 최대한 빨리 찾아내 조용한 방으로 옮겨주던 다르요. 떠나는 날 체크아웃할 때 마지막 인사로 허그하려 하자 긴장하며 어쩔 줄 모르던 다르요.(어쩐 일인지 나도 긴장이 되었었다) 나를 태운 공항 행 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배웅하던 다르요. 1년에 한 번 겨울이면 오겠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던 다르요. 남국의 그 사내, 어쩐지 그도 한 번쯤은 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뜨갈사리 : 5일동안 묵었던 우붓 시내 tegal sari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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