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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Nov 04. 2023

스위트 어니언 Sweet Onion에 다시 간다면

2023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연 이틀째 혼자 와서 밥을 먹고 무언가 끄적이는 나를 보고 주인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그곳은 와이파이(WI-FI)와 간단한 비건 음식까지 주문 가능한 카페였다. 사장은 얼핏 보아도 한 예술할 것 같은 느낌을 지닌 사람이었다.


  대만에서 날아온 ‘발리니스’ 커플이라는 것과 몇 년 전 여행 왔다가 우붓이 좋아서 눌러앉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한 마디로 대화가 통하는 편이라고나 할까. 우붓이 좋아서 아예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을 ‘발리니스’라 부른다는 것도 거기서 처음 들어 알게 되었다.


  그들 커플과 나는 한참 신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뭐 그래봤자 속 깊은 얘기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때 출동한 내 방어기제였다. 그토록 그려왔던 혼자만의 자유로운 여행 아니었던가. 무슨 심리의 발로인지 혼자 여행 중이지만 가족도 있고 독신이 아니다는 설명을 굳이 늘어놓았다.


  카페 분위기도 그들처럼 아방가르드 했다. 허름하고 무질서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조화로움과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바닥과 벽 사이 비스듬히 놓여있는 그림들,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의 다채로운 컬러들은 금방이라도 캔버스에 칠해질 것만 같았다. 작은 무대 위의 기타와 드럼도 그 공간과 잘 어울렸다. 천막을 친 야외식당 지붕 끝에는 색색의 작은 전구들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밤이면 더 예쁠 것 같았다.


  아무튼 그곳은 머무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터넷이 되는 비건 카페였기에 자주 들를 수밖에 없었다. 비건 나시고랭*, 비건 카레, 비건 샌드위치, 비건 라테등을 주로 시켜 먹었다. 이상한 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그 비건 카페를 떠올려보면 먹었던 비건 음식들보다 더 특별한 인상을 받은 일이 떠오르곤 한다. 음식들도 충분히 맛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바로 초대 때문이었다. 그 카페에서는 1주일에 한 번 휴일 밤 9시에 일대에서는 꽤 알려진 파티가 열린다고 했다. 여행자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식이라고 했다. 어느 날 주인 남자가 자못 진지하고도 성의를 다한 자세로 토요일 파티에 꼭 오길 바란다는 당부를 하는 거였다. 재밌을 거라며 주로 혼자 온 여행자들이 많이 온다며 좋은 사람들이 모이니 걱정 없이 와도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나는 그 초대에 고맙다고는 했지만 가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었다. 아니 어쩜 아예 갈 생각조차 못했을 테지만 궁금한 마음은 한가득했다.


  정말 토요일 밤, 9시가 되니 '쿵 쿵 쿵'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머물고 있는 ‘뜨갈사리’ 옆의 또 다른 숙소인 ‘그린 필드’에서도 여행자들이 몰려들겠지.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온 신경이 가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1인룸 대신 5~6인이 쓰는 넓은 방에 묵으며, 희고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스위트어니언’에서 들려오는 라이브 음악소리를 들으면서도 말이다. 때마침 높은 천장을 가로질러 놀러 온 작은 도마뱀 친구가 혀를 날름대며 겁쟁이라고 놀리는 것만 같았다. 한가하고도 무료한 시간이었다.


  영화 속에서 일어 남직한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을 텐데, 친구들과 농담처럼 이런 시간에 대한 낭만적인 상상을 했던 것도 같은데 나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이후 나는 그 카페에 가지 않았다. 돌아올 날이 가까워진 탓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방어적인 내 속이 들킨 것 같아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소심한 겁쟁이 같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아까운 기회였다. 우여곡절 속 첫 혼자만의 여행이 얼마나 좋았으면 우붓을 떠나며 ‘1년에 한 번은 다녀가겠노라’ 속으로 다짐했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다시 기회가 와 발리 우붓에 가게 된다면 몇 년 전 두근거리던 혼자만의 그곳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 특히 아직도 아방가르드한 발리니스 커플들이 스위트어니언을 지키고 있다면, 그 싱글(?) 여행자들의 파티에도 꼭 가보고 싶다.   


  

   * 나시고랭 :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요리로 볶음밥 요리, 볶아 만든(고랭) 밥(나시)이란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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