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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21. 2021

만삭의 아내와 함께했던 여행

Jasper, Canadian Rockies

첫 아이를 출산하기 전 재스퍼로 여행을 갔다. 당분간 여행은 힘들 것 같다는 아내의 불확실한 전망을 애써 믿으며, 당분간 없을 예정인 여행을 떠났다. 당시 캘거리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캐나디안 로키의 남쪽 지역인 밴프로 들어가서 로키를 따라 재스퍼까지 올라간 다음에 동쪽에 있는 에드먼턴이라는 도시를 거쳐 퀸 엘리자베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다시 남쪽의 캘거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나는 그저 아내의 비유만 맞추며 운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믿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밴프 쪽은 이런저런 일로, 가끔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라도 가는 편이었기 때문에 밴프를 지나 바로 재스퍼로 향했다.


로키는 늘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재스퍼에 가보니 제대로 여행 간 것 같이 들뜬 기분이 들었다. 로키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일품이었다.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호수들과 멋진 풍경뿐 아니라 곰이나 산양 같은 야생동물들을 만나는 것도 멋진 경험이었다. 아내는 새끼곰을 보자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어미곰이 분명 근처에 있을 건데도 새끼곰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나를 극도의 긴장감속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아내는 손이 참 많이 가는 스타일이다.     



재스퍼 시내도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밴프 쪽보다는 덜 화려한 느낌이었지만 사람도 훨씬 적고 한적하니 기분 좋은 여행지였다. 사실 캐나다는 어디를 가나 깨끗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를 만나거나 가족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청춘들에겐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겐 정말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가족이 있고 없음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상황이랄까? 어쨌든 이제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고 그렇게 여행을 마쳤다.  




이후로 여행을 하는 등의 일은 출산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큰 애가 태어나면 앞으로 1년 정도는 여행이 어려울 것 같다며 지금 꼭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나를 설득했었다. 나는 아내와 아이가 좀 걱정됐었지만 그 설득 때문에 자동차로 꽤 긴 거리를 여행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 1년 동안 참 많은 곳을 여행했다. 국경도 세 번이나 건넜었다. 아이의 영어 이름과 같은 밴프의 커피숍(Evelyn`s Coffee Bar)에까지 굳이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기도 했다.


때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밖에 나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여행을 가고, 친구를 만나야 해소되는 스트레스의 영역이 있으며 그걸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는 다른 이들로부터 함부로 평가받을 부분은 아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각자가 중요성을 부여한 일들을 따라가는 거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우선순위를 꼭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때의 여행을 통해 그 영역을 발견했었고 여행이 출산 전후의 스트레스를 많이 날린 것을 보면서 현실의 걱정과 어려움을 순간순간 날려버리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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