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보다 수양이 쌓인다
배달을 하다 보면
‘설마’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설마 이 집은 아니겠지
설마 또 저 끝집은 아니겠지
설마 오늘은 안 걸리겠지.
하지만 도착해보면
복도식 아파트의 제일 끝 호수
주차장에서 가장 먼 라인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의 꼭대기층
막다른 골목의 맨 안쪽 집.
어김없이, 결국 그 집이다.
음식점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도 앱은 여기가 맞다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올려보면 2층, 내려가보면 지하 1층,
심지어 지하 2층의 공유주방.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안쪽 복도 끝
작은 테이프에 프린트로 붙여둔 상호.
‘아, 여기가 맞네.’
작게 중얼이며 문 앞에 선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며 설마를 되뇌지만
이상하게도, 결국 그 집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배달은 무탈하게 끝난다.
엘리베이터는 멀쩡히 작동하고
가게도 도로변에 떡 하니 있다.
주차 공간도 넉넉하고 길도 한 번에 찾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설마’의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더 생생하고 더 구체적이다.
그때의 숨소리, 그때의 발소리,
그때의 마음.
기분 탓일까. 그래, 기분 탓이 확실하다.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날엔
그 ‘설마’가 더 크게 들린다.
발걸음은 조금씩 느려지고
문 앞에 서기까지 한숨이 여러 번 섞인다.
머피의 법칙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 순간의 ‘설마’는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톡 하고 건드리고 간다.
오늘도 나는
설마를 되뇌며 그 집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문 앞에 선다.
숨을 고르고 벨을 누른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배달이 끝나고,
나는 오늘도, 나를 단련한다.
그렇게 또 하루를 완주한다.
이렇게,
수당은 통장에 남고,
수양은 내 안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