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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Feb 03. 2021

웃는 남자

셋넷 영화이야기 46 : 상처 2


숲의 바람소릴 들으러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이 영화, 선생님이 보시면 좋아하실 거라고 철이가 권한다. 녀석과의 밀회가 잦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혼자 술 먹으며 중얼대기 볼썽사나워서, 혼자 산책하기 심심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이유로 녀석을 호출하지만 싫은 내색 않고 따른다. 천성인가 싶다. 녀석의 강추도 한몫했지만 이상한 영화 제목에 끌렸다. 마당 넓은 집 우물 마르듯 웃음기가 조금씩 메말라가는 걸 느꼈다. 갑작스러운 부모와의 잇단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았고, 2004년부터 시작한 셋넷의 항해가 정박할 항구를 찾지 못하고 떠돌았다. 함께했던 동료들과 제자들이 하나 둘 사라져 빈자리들이 쓸쓸했던 것도 웃음을 낯설게 만들었다.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 남자는 아동 인신매매단에 팔려가 양 쪽 입가를 흉측하게 찢긴다. 늘 웃는 모습이 되어 마을과 장터를 떠돌며 기괴한 웃음거리가 되지만 후작의 아들이었다는 기막힌 사연이 밝혀진다. 영화는 빅토르 위고가 마주했던 19세기 프랑스 왕족과 귀족사회의 위선과 뻔뻔함을 거침없이 고발하고, 매일매일 상처투성이 웃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시대의 절망을 드러낸다.     

 

후작의 신분을 되찾은 주인공 웃는 남자는 자신을 어처구니없는 운명으로 조작한 의회에서 회심의 연설을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생존의 삶에서도 바보처럼 웃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탐욕에 찌든 사람들에게 일깨운다. 레미제라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예언한 뒤 그가 떠돌던 장마당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타락한 사랑으로 상처 받은 장님 애인이 그와의 행복한 추억을 등불 삼아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 남자는 세속의 권력과 유혹에 빠졌던 자신을 책망하며 그녀를 따라 첫 키스의 장소인 강물 속으로 빠져든다. 비로소 주인공 웃는 남자는 평화로운 웃음으로 온몸을 채운다.       


고단했던 삶으로 상처 가득한 그녀가 긴 시간여행을 지나 우리에게 애절하게 요청한다. 국민을 제 입맛에 맞는 방패로 삼아 기만하고 이용하면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21세기 대한민국 정치 왕족과 자본 귀족들에게 눈먼 그녀가 간절하게 손짓한다. ‘낡은 마차의 기억, 곰 가죽 위에서의 잠자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숲의 바람 소릴 들으러 우리, 지금 당장 떠나야 해요.’ 눈먼 그녀를 따라 이별과 상실감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나와 셋넷이 숲을 찾아 떠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세속의 유혹을 흩날릴 숲의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해, 단절과 의심들로 길이 끊어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새 길을 찾는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지난주에 몇 번이나 웃었나요? 온몸으로 웃었던 적이 지난 달인가? 혹시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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