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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Apr 14. 2021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셋넷 영화이야기 56 : 꿈 사랑


지금여기에는 없는 촌스런 사랑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기로 결정하는 순간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지만 사랑이 멈추는 때이기도 하다고 여주인공은 회상한다. 젊은 날 맑은 사랑과 꿈들을 가슴 가득 키우다 집과 가족을 위한 생활에 얽매이며 사랑이 멈추고 꿈이 멈춰버린 어른들의 이야기가 추억된다.      


다 자라 버린 아이들, 말없이 TV만 보고 있는 남편, 가사와 노동으로 빼꼭 찬 톱밥 같은 일상을 이어가던 중년 주부에게 뜻밖에 찾아온 나흘간의 휴가. 그녀는 정신없이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가 잠시 멈춘 듯 자신의 일상을 낯설게 살핀다. 2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두리번거리다 뭔가 비어있는 자신을 느낀다. 가족과 분리된 혼자만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어색해진다.        


“로즈만 다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리를 찾아 머뭇거리던 낯선 사진작가와 만나 가족을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새겼던 길들여진 자신을 돌아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던 결혼 전 꿈을 기억해내고, 여행을 좋아해서 미지의 세계들을 동경했던 풋풋했던 자신을 다시 만난다. 사진작가는 가족과 생활에 갇혀 꿈을 잃어버린 그녀를 부드럽게 깨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다시 깨어난 그녀가 촌티 나는 다리 위에서 그려내던 사랑은 빛이 바뀌기 전에 세심하게 찍어내야 하는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다. 떨림. 기다림. 손끝 아린 긴장. 설렘. 스칠 듯 말 듯 한 지나침. 느릿한 노을 속 서성거림. 섬세한 배려. 망설임. 하나라는 느낌. 가슴 저림. 불규칙한 호흡. 머뭇거림. 딱 한 번 오리라는 확실한 감정들은, 감동이 삭제되고 존중 없는 접촉이 난무하는 시대에 좀처럼 만나기 힘든 촌스런 사랑의 방식들이다.      

 

두 사람은 세상 굴레에서 벗어나 나흘간의 사랑을 품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알 수도 없고, 실체도 없고,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희미해질 무렵 그녀는 마지막 생의 인사를 남긴다. “내 일생은 가족에게 바쳤으니 내 마지막은 로버트(사진작가)에게 바치게 해 다오.”     

 

무기력하게 일에 떠밀리고, 쑥쑥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조급해지고, 지쳐가는 몸과 긴 노년에 불안해하고, 빠르게 비어 가는 통장잔고를 더듬거리며 도박 같은 미래에 딜을 해야 하는 일상의 무게에 휘청거릴 무렵,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의 로즈만 다리를 다시 떠올린다. 알 수도 없고 실체도 없고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희미해질 무렵, 마지막 생의 인사를 누구에게 남겨야 하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촌스런 사랑이 흰 나방처럼 날갯짓하는 촌티 나는 다리는 이제 사라지고 없는데...    



* 제목 사진 : 베를린자유대학교 셋넷학교 초청공연 후 체코 체스키크룸로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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