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그리운 걸까요.
이 엉덩이는 아빠거고 이 엉덩이는 엄마꺼
토실토실한 아이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으면, 나는 그렇게 그게 좋았다. 누군가는 딸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는 행위를 크게 확대해석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건 아니다. 그냥 귀여워서 그렇다. 단순히 그게 이유였다.
그러다가 요즘은 그 귀여운 엉덩이를 내어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우리 딸은, 요즘들어 나름 여우짓을 하기도 하고, 아빠와의 접촉을 많이 피하는 모양새이다. 그도 그럴것이, 아빠보다는 언제나 엄마가 우선이고, 아빠는 자기를 귀찮게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이 참에, 너에게 관심을 끊어볼까? 라고 어름장을 놓지만, 1시간도 안되어, 금방 내가 다가가고 만다. 그렇게 아빠는 딸아이에게 항상 진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아내다음의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건, 아이와 같이 목욕탕을 못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4~5살무렵에는 자주 목욕탕에 갔었다. 아이도 탕안에 몸을 담그는 걸 좋아해, 가끔씩 갔었다. 근데, 언젠가 부터 그러면 안되는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건, 아이가 탕안에 앉아, 두리번 거리는 시선을 느낀 다음이였다.
그래서, 아이와 마지막으로 6살무렵이였나, 강원도 리조트를 놀러가서,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아침시간대에 목욕탕을 갔었다. 그게 아이와 같이 목욕탕을 간, 마지막 날이고, 우린 그걸 사진을 남겼다.
뭔가, 아이와 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게, 너무 슬펐던 그런 하루로 기억한다.
아이는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 때는 [미쉐린 캐릭터]같던 그녀의 팔과 다리의 토실함은 온데간데 없다. 터질것 같던 볼살도 몰라보게 빠져있다. 훌쩍이던 콧물도 없고, 침흘리던 그 귀여운 입술도 점점 변해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모순 투성인 생각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스스로 하고 있는 딸을 보고 있지니, 대견하다는 생각전에, [언제 이렇게 컸지..]하는 아쉬움이 드는건, 왜일까?
나는 아빠하고 결혼할꺼야
딸을 가진 아빠라면, 언젠가 한번을 들었을 법한 이 불변의 계약은, 나에게만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는 이 딸을 어느 대단한 남자에게도 보낼 생각이 없다. 내가 천년만년 끌어앉고 살고자 한다. 물론, 이 아이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근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변하가고 있는것 같다.
"세인아. 세인이는 아빠하고 나중에 결혼할꺼지?"
"................................"
대답이 없다. 아직 결혼이란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아빠하고 오래 같이 있자라는 뜻일진데, 그 아이는 애끓는 이 부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한다.
아침 출근전에, 조용히 다가가 뽀뽀해주면, [아빠 다녀올께~ 사랑해]라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아빠. 문닫고 나가]라고 싸늘이 말하는 그녀는, 이제 나만의 아이가 아닌, 그냥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만, 계속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는건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아이는 이제 양팔로 들기에 다소 부담되는 키와 몸무게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딸은 수수께끼를 좋아해서 문제를 내달라고 많이 한다. 당연히 맞출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고집스럽게 내달라고 한다. 혹, 이게 그 성장기의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도 들어, 열심히 문제를 만들고 말해줬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날엔가는, [아빠. 이건 왜 그런거야?]라는 [왜?]라는 질문들이 많아 졌다.
나는 그것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건지 알고, 어렵겠지만, 여러가지 말을 해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건 비행기나 기차가 아니고, 빛이란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수영을 할 줄 안단다.
"지구는 돌아가는데, 우리는 느끼지 못해. 왜냐하면 돌아가는 힘만큼, 우리는 반대로 끌어 당겨지고 있는
거거든. 버스를 타고 있다가 갑자기 빠르게 출발하면, 우린 그 반대쪽으로 움직이잖아. 그 반대쪽이 땅이야"
"지구가 돌면서 달에 가까워지면, 바닷물이 밀려 나간단다. 이걸 썰물이라고 하지. 다시 달에서 멀어지면, 바
닷물이 밀려 들어오지. 이걸 밀물이라고 한단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은, 이런 것들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알고 이해하라는 것은 아빠의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며, 나는 단지, 이 아이가 나중에 성장했을때, 아빠가 이런것들을 가르쳐주면서 같이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아이란다...라고.
나는 이 아이의 기억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아이에게 하고 싶은 얘기나 말들, 또는 특별히 기억할 일들에 대해서는 따로 다이어리를 만들어 쓰고 있다. 출장갈때마다 그 호텔의 편지지와 봉투를 이용해서 글을 쓰는건, 내 나름의 버릇이 되었고, 항상 호텔과 방번호를 적는건, 언젠가 그 아이가 나와 같은 방에 머물렀을때, 그 편지를 썼다는 걸 기억해 달라는 아빠의 마음일 것이다.
이젠 더 클 것이다. 몸도 마음도 계속 성숙해지며, 여느 아빠들처럼, 딸아이가 나와 멀어지지 않을까 자못 걱정이 된다. 항상 내 옆에서 아기로서만 머물러 달라는것은 분명 아빠의 의미없는 욕심일 것이다. 또한, 그건 아이에게도 당연히 좋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