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 미묘한 감정의 기록
- 오빠, 화장실로 와봐.
아침에 자고 있는 나에게, 와이프가 화장실로 부른다. 그러면서 불쑥,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준다.
두줄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는 첫째를 가진 지 10년이 되었다. 이제 그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둘째를 바라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바랬던 것도 아니였을진데, 상당히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건, 뭔가 가장으로서 부양해야 하는 생명체가 하나 더 늘었다는 감정이었을까.
하지만, 아직 그 존재조차 미미한 아이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모를 벅찬 감동이 몰려온다.
그렇다. 나는 원래 아이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금 첫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바보 유전자가 몸속까지 깊숙이 박혀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여러 조건들을 합리화시키면서, [한 명이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한다. 전 지구적으로 생각해봐도, 80억 명이라는 인구를 지구가 다 받아줄 리 만무하다는, 인간들로 인해 지구가 황폐해질 수 있다는 다소 철학적인 이유도 내세우며 한 명의 자녀로 만족하려 했지만, 그래도 둘째의 소식에 내 몸의 반응은 다르다.
우리는 원래 아이 한 명만 가지려고 했다. 그렇게 세명이 오손도손 살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흘러,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집과 와이프 집의 가족을 모두 합치면 8명이지만, 그쪽과 우리 집에 결혼을 포기 <?>한 사람이 한 명씩 있다 보니, 결국 2세는 우리 아이 고작 1명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아이를 보고 유일한 상속자라고 하면서 웃었지만, 실상, 사촌 한 명 없는 내 딸아이를 생각하니, 이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할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8명이 결국 1명을 생산 <?>해 낸 것은,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내 동생이 자신의 가치관을 깨고 결혼을 할 것인가, 내가 아이를 더 낳을 것인가에 대해, 매년 부모님은 걱정에 걱정을 하였던 참이었다.
-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사람이 아직 얼마나 많은데,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하는 거 아닌가.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자연스럽게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
- 만약 아이가 우리에게 와 준다면, 그 아이도 충분히 사랑받고 자랄 거야.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 둘은 그냥 모든 게 신기했던 것 같다.
먹는 음식이 아이에게 간다며, 음식 하나에도 조심해야 하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미리 장난감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아이가 나오기도 전에 이것저것 방을 채워 넣는데 열중했었고, 온 방에 모서리란 모서리에는 전부 붙인 보호대며, 아직 아이가 태어나려면 4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유모차까지 털컥 사버리는, 뭔가 준비 안된 부모들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열이 나면, 그게 그렇게 걱정되어 밤새워가며 손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곤 했었고, 행여나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감기 걸린 게 아니냐며 호들갑 떨던 그런 초보 부모였고, 기저귀도 영양제도 음식도, 뭐가 좋더라 하면, 그게 상술인지 알면서도 손이 갈 수밖에 없었던, 그런 부모였다.
- 아직, 너무 작은지 아기집은 보이지 않지만, 벽이 두꺼워졌고, 여러 가지 증상으로 보면, 다음 주면
아기집이 보일 겁니다.
오랜만에 간 산부인과의 의사의 친절한 설명에, 아직 아기집이 안 보인다는 소리가,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렸다. 당연한 얘기를 했을 건데, 나는 노산인 와이프가 혹시나 뭔가 잘 못된 건 아닐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에서 나는 제삼자였으니, 와이프가 느끼고 있는 현재의 감정을, 나로서는 결단코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아니, 지금도 이해하고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 이제 호르몬 변화가 있어서 갑자기 화가 나거나 짜증 낼 수도 있고....
- 여기저기 통증이 있는데, 당연한 것이며....
- 너무 덥게 지내면 안 되고....
의사는 차근차근 하나부터 다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와이프는 울기 시작했고, 당연하다는 듯, 의사 선생님은 티슈를 꺼내 준다. 마치, 매번 겪는 일상인 것처럼 말이다.
임신이 두 번째라 다소 담담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역시 본인에게 그런 것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나의 안일한 생각이 단숨에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첫 번째 임신 시에 잘 대해줬나 생각한다. 여성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냥 말만 [힘들지?]라고 말하는 것은 혹시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말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서운한 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산모가 된 와이프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내년 여름에나 만날 수 있을 아이가 아무 문제없이 건강하게 나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웃는 그날을 상상할 뿐이다. 앞으로 10개월..... 어떻게 기다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