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권자 답게 행동하자.
The buck stops here.
해리투르먼(미국 제33대 대통령)이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하면서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항복으로 제2차세계대전은 끝이났지만, 일본은 항복을 거부했고, 그런 일본과의 전쟁을 트루먼은 조기에 끝내고자 원폭을 사용했다. 만약 전쟁종식을 위해 미군을 일본에 상륙시킬 경우, 25만명에 달하는 미군이 사망할 것이란 조사결과를 본 이후였다. 핵으로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전쟁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결정에 따라서 한 행동이었지만, 그도 알았을 것이다. 일본도 수십만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나올 것이란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순간 후대의 그 어떤 판단에도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회사에서 보면, 자신이 어느정도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한다, 안한다]를 명확히 얘기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도 엄청나게 많다.
이런 일화가 있다.
A회사의 제품양산이 5월부터 시작인데, 3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품질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5월에 양산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업부장의 KPI(Key Performace Indicator, 성과지표)등의 차질이 발생하는 중대한 건으로, 4월초에는 라인테스트를 꽃아 넣어야 해야한다. 다만, 아직까지 미세한 불량이 해결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석대로 품질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양산으로 들어간 이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거래처에 양산일정의 차질을 요청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정도의 품질문제라면, 다소 적법하진 않다 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적당히 덮고, 5월부터 양산물량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물론, 말도안되는 제품상태를 논한다면, 양산이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그 [한 끝 차이]때문에 양산의 행방이 오고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100개 샘플중에 불량은 O인데, 1000개를 해도 O이 나와야 할텐데, 불량이 1개 나왔던지...하는 그 한 끝차이.
내가 선택을 하는 입장의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책임을 지고 가야한다.
어영부영 상황만 보다가, 적당히 넘기려고 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넘기려고 하는 그런 행동은 절대 하면 안된다. 그래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쉽다. 자고로 선택하는 사람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긴 어렵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도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커다란 프로젝트의 경우, 임원들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임원들은 회사의 계약직이다 보니, 나쁘게 말하면 파리목숨이다. 별을 달았기에 월급을 많이 받는다 부러울 수 있겠지만, 대부분 최초 2년계약 이후에는 상부의 지시에 [Yes 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대단한<?> 임원생활을 좀 더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임원들앞에 있는 목표수치는, 그들의 생명줄과도 같다. 한두번 그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거나 달성하지 못하면, 옷벗고 나와야 할 수도 있다.
저 A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업부장은 끝끝내 결론을 내 주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본부장도 결론을 내지 못한채, 품질개선만을 더욱 압박했다. 팀장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였음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팀장은, 불량을 적당히 덮고, 거짓으로 보고서를 작성, 5월 양산을 밀어붙였다. 양산은 되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반년 후, 사내감사를 통해, 서류조작으로 정직처분을 받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결정을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을 내 줘야 움직일 수 있다. 양적인 것을 택할건인가, 질적인 것을 택할 것인가. 회사의 기본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를 택한다. 질적으로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은 흔히 드라마에서만 있으며, 특별히 국민의 신뢰를 중요로 하는 사업에만 적용되는 한정적인 말 일 가능성이 크다.
알고 있다. 그로 인해 결정권자가 달겨 받을 책임의 부담감을 말이다.
다만, 그에 따라오는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정도는 알아줬으면 한다. 좋은 회사라면, 당신의 그 판단의 근거에 집중할 것이고, 그 과정의 문제점을 되집어, 더 이상 재발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회사라면, 당연하게도 남 탓 만을 하겠지만.
남의 밥줄이 달린 문제를 도덕적인 관점에서 고리타분하게 말하고 있는 내 자신도, 그런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의 근간에 있는 딱 한마디는, [남들한테 쪽팔리지 말게 살자] 이다. 반드시 지킨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최대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하루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해악이다] 라 했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만물의 근본이겠으나, 이러한 조직내에서도 적용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