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 앤 데어

롱 ~~~~ 디

by 여니


놀란 심장을 튀어나오지 않도록 꽉 부여잡은 손 에는 지난 15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나만 아는 오래된 이야기. 누구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눈앞에 펼쳐 있는 상황으로 당황한 기색 앞에

가빈은 앞 쪽에 아이를 안고 자리에 앉았다.

' 결혼은 했지? 아. 그랬구나.'

마주 한 둘의 공간 에는 서로 가 걸어온 길의 다른 냄새. 느낌. 시간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앉았고, 가빈의 눈은 진정이 되고 난 후에야 남자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몇 살이야? 귀엽다. 넌 안 닮았네..'

청년에서 성인이 되어 버린 남자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가빈 과의 주고받는 대화 사이사이에 저 너머의 눈길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곤 했었다. 카페의 소란한 이야기는 그들의 대화의 배경 일 뿐, 마음의 물음 만이 그들의 대화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뭐 해? ' 가빈이 가 묻는다.

'아직, 나 결혼 안 했어. ' 남자의 단호한 대답

'아. 그랬구나, 뭐 좀 늦기도 하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더라고.'가빈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했다.

아이의 육아 이야기, 남자의 주변 이야기로 장황한 주제를 늘어놓은 점심 식사였다.

'내가 좀 안아 봐도 돼?; 남자가 물었다.

'그럼.'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 가빈의 기억 속의 남자는 이제는 사회적인 안정을 갖추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갖춘 멋진 남. 자. 가 되어 있었다.

'다음에 또다시 보자.' 남자는 그만 일어 서 자며 마지막 말을 건네었다.


긴장이 풀어져 힘이 없었지만, 아이를 안아야 하기에 더 많은 힘을 내어 보고선 , 가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맘속의 이야기를 전했다.

'멋있어졌구나. 좋아 보인다. 좋은 여자 만나면 좋겠네.'


그 둘..

둘의 연애는 양 볼의 수분을 잔뜩 채운 물 먹는 하마 가 되어 가고 있었다. 채우고 또 채워가며 ' 사랑'이라 부르는 진중하고 무거운 감정으로 둥실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힘든 일을 겪어 낸 남자는 무언가의 결심을 말하려는 듯 입이 무거웠다.

'근데,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해.'

'어딜?' 가빈의 눈은 세모가 되어 버렸다.

'공부 좀 더 해 보려고...'

재밌겠다면서. LDR(롱디) 그 거 해 보고 싶었다고. 홀홀 대면서 가빈은 벌써 아름다운 연애의 상상을 마친 듯 한 표정으로 이어갔다.


롱디는 어려웠다. 하고픈 말을 전하려면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 눈에 선했고, 전하는 방법 이라곤 이메일과 편지뿐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너무나 보고 싶어서 눈을 찔끔 감고, 하루를 버텨내는 그들의 롱 ~~ 디는 어쩌면 신 이 주신 인내의 힘을 길러주는 선물 인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만남임을 말해주는지 질 모른다. 인연이란 정의를 단순히 단정 지을 수 있던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대에 관한 생각이 비숫하고 , 비뚤어진 코, 조금 길어진 눈매 일 지 언정 , 그저 내 눈에 보배 아니던가?. an apple of my eye. 첫눈에 서로의 닮음이 서로의 믿음으로 부화되면서 평생 이란 긴 시간을 같이 보내어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 들. 가빈에게도 롱디 청년에게 또한 그랬을 테니까.

1년의 시간은 따스한 바람이 불어 꽂을 피워내고, 울창한 숲 아래에서만 그늘의 아름다운 휴식을 맛볼 수 있는 여름을 지내야 했다. 짧은 전화 통화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봄과 여름도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봄은 모두가 무언가를 피워내는 따스한 품을 가질 수 있다. 달아오르는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이면에 숨겨진 것들. 그렇다. 바라는 것. 꼭 무언가를 얻어내진 못 할지라도 듣고 싶은 것. 들어야 하는 것들이 여름을 준비하는 어린 나뭇가지처럼 스멀스멀 둘의 가슴속에도 피어나고 있다.


'있잖아. 오늘 너무 힘들었어.. 언제 올 수 있어?'

오늘은 반드시 용기를 내어 보자며 가빈은 국제전화를 걸어본다.

'과제가 너무 많아 잠도 못 자고 있어. 친구들이랑 리포트 써내야 하고, 밥 값이 얼마나 비싸던지, 죽을 지경이야. ' 남자의 매끄럽지 못한 음성이 전화로 들려온다

'아 , 그렇지. 그렇겠구나. 그래도 조금 더 힘 내, 알았지? 밥 꼭 먹고.' 툭 끊어진 국제전화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가빈아. 거긴 파리라고. 아시아에서도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야만 갈 수 있는 곳. 지구촌 작은 한국 과는 비교가 불가 한 삶. 물가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리바**트의 갓 나온 빵을 기대하는 건 어림도 없는 나라. 오전의 식사라고는 딱딱한 바게트에 우유 한 잔인 걸. 건강을 해질 까 두려워서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 한국의 풍요는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지친 여름날의 더위 탓에 위로의 말을 전해 듣고 픈 것이었지만, 롱디에게 듣지 못한 말이 이내 서러웠다. 가빈은 다시 하지 못 한 말을 전하려 편지지를 펼쳐 본다. 화가 났었다고, 너만 힘드냐고 원망의 말로 시작한 글을 박박 지워내고 또다시 온기의 언어들을 써 내려간다. 타국에서의 경험을 알 도리가 없다고, 그래도 롱디를 응원하겠다며 예쁜 글로 마무리해 본다. 곧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온다고, 조금만 버터 보자고, 겨울에 잠시 한국에 들어 올 날을 기다려 보자며 우체국으로 달려가본다.


사라짐.

어쩔 수 없음의 존재의 사라짐

부재를 느껴 본 다는 것, 그 고통은 계절의 경계를 알기에는 길고도 험난 하다.


날이 새도록 편지를 써 내려가던 그 시절에 그들

너무 먼 거리에 서로의 맘을 담아내기엔 부족했던 시간과 공간들


조용조용 비 가 공기를 적시는 날 에는 그 공간에도 내릴지 모르는 비 줄기마다에 사연을 적어 보고

뭉근하게 가득 기운이 내려앉은 날에는 그 공간에도 가라앉아 있을지 모르는 곳에 나의 이야기를 전해 보고

바람 소리가 가득했던 숲의 호흡을 들려주던 네가 많이 보고 싶었던 그때로 가빈의 기억은 다시 소환되고 말았다.

그들의 헤어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던, 알아선 안 될 구름이 가득한 카페 라테만큼 깊은 맛이었다고 가빈의 기억은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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