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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Dec 12. 2022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한 가지 새로운 비밀

말해줘서 고마워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한 가지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24년 간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외할머니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방식은 꽤 독특했다. 

 2020년 8월, 막내 이모가 책을 냈다. 책 제목만 보고는 나는 그저 양육에 관한 교양 서적이라 생각했다. 출간 예정일에 맞춰 책을 사 놓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책을 펼쳐보았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20대 초반이었던 이모는 우리 집에 잠깐 머무르며 나를 돌보아주었다. 항상 밝고 유머 감각이 넘쳤던 이모는 어릴 적부터 늘 생각이 많고 진지했던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꺄르르 웃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유머와 긍정적인 성향이 두 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겠지’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이모의 어릴 적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었다. 이모의 가정환경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곧 우리 엄마의 이야기였고 나는 말하지 않아 몰랐던, 아니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못했던 엄마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외할아버지는 오랜 투병 기간 끝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외할머니 역시 암 진단을 받았다. 나는 한동안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치료를 따라다니며 엄마의 슬픈 표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외할머니가 떠난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엄마가 더 이상 마음 아파하며 간병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는 장례식 이후 하루도 채 쉬지 않은 채 바로 일을 나갔고, 우리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렇게 24년이 지났고, 나는 이모의 책을 통해 외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사실은 나에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쾅 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 감정은 다른 말로 말하면 상처였다.


‘그때 엄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무리 어렸어도 그렇지, 왜 나는 몰랐지?’,

‘이 책을 보면 엄마는 나보다 더 힘들텐데?’, 

‘이모는 굳이 책을 왜 쓴 거지?’ 


여러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책을 보기 싫어 덮어 버리고는 안 보이는 곳에 깊이 쳐박아버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스윽 물었다. 


“이모 책 읽어봤니? 난 주말에 다 읽었다.”

“응, 나도 읽었어. 금방 읽을 수 있던데.” 


난 답했고 엄마는 물었다. 


“벌써 다 읽었어?” 

“응” 

“…”      


 그리곤 몇 초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턱 밑까지 차오른 어떤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꺼내면 마음이 아프니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니까.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금껏 서로의 아픔을 대략 짐작은 하면서도 나누지 못한 채 외면해왔다. 그리고 그 아픔은 각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24년 전, 엄마에게 누구도 물어봐주지 못했던 말. 엄마는 간절히 바랐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주기를. 그러나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것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뜻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깊은 숨을 몇 번 들이마시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엄마, 외할머니 그렇게 돌아가신 거 말이야. 

난 이제야 알게 됐네...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 그때 어떻게 버텼어...”


 엄마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리곤 몇 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 같았다. 


 엄마는 그 날의 기억을 생생히 기억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엄마는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집에 함께 내려와 있었고 그날 역시 할머니는 많이 아파 고통스러워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빠의 백내장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고 엄마는 아픈 엄마를 남겨둔 채 저녁 늦게 서울에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외할머니는 농약을 들고 밭에 나가 스스로 숨을 거두셨다. 얼마나 많이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그날 같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외롭게 돌아가시진 않았을텐데… 며칠이라도 더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엄마는 북받친 감정에 눈물을 쏟았다. 


 외할머니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이 아프셨던 것 같다. 사별의 아픔도 치유되지 않은 채 암 진단을 받으셨고 자식들은 제 먹고 살길을 찾기 바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자살 유가족이 된 우리 가족들은 각자의 이유로 ‘나 때문에…’ 라는 자책과 후회에 시달렸다. 아빠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사실. 24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낸 진실이었다. 그렇게 우린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말하지 않아 몰랐던 사실들. 

말하지 않아 몰랐을까,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말했다.


“물어봐줘서 고마워”

나는 생각했다.


“이모, 용기 내 말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엄마한테 물어봐 줄 수 있었어”   

   

 우리 주변엔 다양한 이유로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다. 전세계 인구 중 4분의 1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모종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코로나 시대, 뉴노멀 시대엔 바뀌어야 할 오래된 통계 자료에 불과해졌다. 이제 정신건강은 4분의 1 확률이 아닌 ‘누구나’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우울하고 불안한 것이 나만이 겪는 특별하고 이상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울한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시대. “잘 지내지?”란 안부인사보다 “요즘 마음은 괜찮아? 어때?”란 인사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요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 질문. 한 번 용기 내 해본다면 어떨까. 말하지 않아 몰랐을까,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못했을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평생 혼자 감당해야 하는 아픔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본다.     



“엄마 미안해, 엄마 마음 조금 더 일찍 물어봐줄걸”         



멘탈헬스코리아 장은하 부대표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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