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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Aug 21. 2024

사춘기에도 대화가 필요해

17회 야구소년 부모 편 - 사춘기아들과 대화의 물꼬 트기

말이 없는 아들, 말하지 않는 아들이 답답해 채근하는 엄마.

대부분의 질문에 대답이 없다가 어쩌다 하는 대답은 '몰라.' '말하면 알아?' '내버려 두라고.' '왜, 또?' 였습니다. 이 말들의 공통적 숨겨진 의미는 '저는 엄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가 아닐까요?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를 이런 말들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티처스 17회 도전학생은 야구선수의 길을 걷다가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고 입시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입시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없었던 학생 어머니는 아들을 어찌 도와야 할지 막막해하셨어요. 도와주고 싶지만 방법은 모르고,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 아들이 미덥지 못한 엄마의 대화를 살피면 몸은 아이에게 다가가면서 말은 아이를 밀어내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뭘 알고 공부하는 거냐'는 심히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부터, 뭐가 힘든지 말을 안 하니 모르겠다거나 사람이 대화를 해야지, 엄마 보고 얘기 좀 하라는 다그치는 말로 대화를 시도하니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채널에이 티처스 17화중에서


 물론 도전학생의 불손한 태도도 지적받을 수 있겠지만 서로에게 날이 선 말과 태도는 이미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야구선수를 목표로 합숙소 생활을 했던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며 집으로 들어왔으니 아무리 부모 자식이어도 그 간극을 하루아침에 메우기는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악순환의 루트에서 벗어나 선순환의 고리로 옮겨가는 것을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이가 먼저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어른이고 부모인 우리가 힘을 내서 옮겨가야 합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과 어긋나기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이 아이들은 듣기 싫은, 맞는 말만 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틀린 말을 하면 반항이라도 제대로 할 텐데 맞는 말이어서 더 짜증이 납니다. 사실 부모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초등고학년, 혹은 중학생이 되면 학교 정기시험도 치르고, 여러 학업 부담이 올라가면서 공부나 성적, 학원, 숙제 등에 대한 이야기만 대화소재가 되기 쉽습니다. 또 바쁜 부모들이 마련한 대화시간이니만큼 가능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공부나 태도, 습관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명령조나 잔소리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청소년기 아이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거나 친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도 그렇지 않나요? 아무리 옳고 맞는 말이어도 기분 나쁘게 훈계나 비난하듯 말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그 말이 나에게 득이 되는 말이라도 듣기 싫어집니다. 물론 옳은 말을 하는 입장에선 이 당연한 것을 왜 모르는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지 답답해서 언짢은 어조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언짢은 기분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말투와 말, 표정까지 다 세심하게 신경 쓰는 영리함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비평가, 심사위원, 조언자의 역할은 내려놓고 아이와 웃을만한 시답지 않은 수다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필 그 사춘기부터 우리는 입시가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부모인 우리들도 그런 여유를 가지기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관심사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공감을 해주는 노력을 사춘기가 오기 전부터 기울여 둬야 합니다. 가령 부모에게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영상이나 콘텐츠일지라도 아이들이 보고 깔깔 웃을 때 마음이 불안한 많은 부모들은 "넌 이런 게 재미있니? 이런 쓸데없는 거 좀 그만 봐!"라고 하기 쉽지요. 그 말이 나가는 순간 아이의 대화상대 리스트에서 제적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는 "이게 요즘 유행하는 거니? 아이고 엄마는 늙었는지 어디서 웃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근데 에바가 무슨 말이야?"하고 같이 웃지는 못해도, 관심을 보이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친절합니다. 이런 게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누가 유명한지, 신조어의 뜻도 친절하게 가르쳐주죠. 그런 시시껄렁하고 하찮은 대화들이 쌓여서 부모가 싫지 않고 부모와 말을 하는 게 싫지 않아야 고민도 이야기하고 조언도 구할 수 있겠지요.


또 카톡이나 문자로라도 아이에게 공부법이나 학과목 내용 링크 전달은 멈추고(아이가 먼저 요청한 게 아니라면, 어차피 아이는 그걸 보고 따라 하지 않습니다. ), 아이가 보면 웃을만한 사진이나 이야기들을 보내보세요.  그걸 계기로 한번 더 같이 웃고 꽁냥꽁냥한 대화를 주고받는 기회가 됩니다.


도전학생 어머니의 말을 몇 개만 바꿔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뭐 했니?"    ====>  "학교에서 뭐 재밌는 일은 없었니?"

"근데 뭘 알고 공부하는 거냐?"   ====>   "많이 힘들지는 않니?"

"뭐가 힘든 지 왜 말을 안 하냐?" ====>  "엄마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엄마도 같이 노력할게."

우리 어른들도 대부분 이런 다정한 말을 들으면서 자란 게 아니어서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처럼 부모도 좋은 방법을 찾아 노력을 해야 관계가 풀리겠지요.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할 때는 부모가 밀착마크를 하면서 크게 다치지 않도록 따라다녀 주는 것이 사랑이었지만, 십 대가 된 아이들이 한걸음 뗄 때마다 따라다니며 안전을 챙겨주는 것은 그 아이에게 맞는 사랑이 아니잖아요. 사춘기는 확실히 부모에겐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버려 두라고 허세 가득 부리다가, 왜 동생만 이뻐하냐고 버럭 하는 앞뒤도 좌우도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 사춘기니까요.


그러나 몸도 마음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시차를 겪고 있어 힘든 아이들이 밀어낼 때 살짝 밀려나 주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밀어내는 것은 부모가 싫은 것이라기보다 자기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몇 년 후 다가올 독립을 위해 작은 공간부터 작은 시간부터 혼자 있어보고 혼자 생각해 보는 시간인지도요. 물론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예의 바른 태도와 말투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른도 힘든 걸 미숙한 아이들이 잘 할리 없지요. 그래서 아이가 툭툭 거려도 짜증 내도 그 말을 어른의 말이 아닌 버튼 고장 난 아이의 말로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느 집 사춘기나 하는 말 "알아서 한다고!"라는 말에 "알아서 하긴! 아는 놈이 그따위로 해?"가 아니라 "그래 우리 아들 다 컸는데 엄마가 걱정이 과했다. 믿어볼게!" 하고 믿어줘 보는 겁니다. 물론 정말 알아서 잘하지는 못할 수도 있지요. (그게 되면 아이가 아니니깐요.) 그래도 '했다면' 칭찬해 주고, '알아서 했다면' 그것도 칭찬해 주고 다음에는 알아서 '잘' 하기까지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사춘기를 성장시키는 방법이 아닐까요? 인사이드아웃 2에서 처럼 아주 살짝 누른 버럭 버튼과 눈물 버튼에 휘말리지 말고 어른다운 평정심을 유지해 보는 거죠.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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