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으로 꿈을 꾼다. 잠에서 깨고 나면 꿈속의 서사가 베개 자국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꿈속에는 나와 얼굴 없는 타인들이 다섯 명 정도 나오는데, 그들의 얼굴만 기억나지 않을 뿐 그 안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침대 맡에 있는 작은 노트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불 안에서 꿈틀거리다 보면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금세 증발해버린다. 그러면 나는 꿈 따위는 꾸지 않은 사람이 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요가 매트를 펴고 명상을 하다 보면 문득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실마리를 따라 찾아가다 보면 그 속에서 있었던 일들이 내 안에서 반복된다.
근 이년 동안에는 매번 비슷한 꿈을 꿨다.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고 나는 죽을힘을 달해 달아난다. 쫓고 쫓기는 꿈이었고, 매번 쫓기는 쪽에 속했다. 해리포터 불의 잔처럼 미로 공간에서 쫓기기도 하고,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쫓기기도 했다. 매번 도망치고 있었지만 늘 혼자는 아니었다. 함께 숨었고 함께 뛰었다. 끝내 흩어져야 하긴 했다. 프로이트의 꿈 분석을 공부하기가 무서웠지만, 무언의 압박감이 나를 누른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그 꿈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고 보다 더 자주 꾸고 있다. 전에는 꿈에서 깨어나면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요즘은 아쉬움이 남는다. 며칠 전 꿈속의 나는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자의에 의한 죽음은 아니었지만 죽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꽤 안정적인 기분이었다. 죽음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평소처럼 행동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더 애틋하고 소중한 감정을 느꼈다. 불안은 내가 그 날짜에 죽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그날이 지나도록 죽지 않는 걸까. 어째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나눴는데, 다시 삶을 마주하자 내가 거짓부렁이 된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어느 만남이 마지막인지 알 수 없다는 물음을 품고 일어났다. 엊그제는 또 새로운 꿈을 꾸었다. 눈이 내리는 날 커다란 이층 집 오두막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송년회 따위를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세미나 같은 것을 듣고 있었고, 그 애와 나는 몰래 빠져나와 눈 놀이를 했다. 보슬보슬한 눈을 만지다 영화 주인공 만치 뛰어다녔다. 날이 정말 추웠는데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의 온기가 만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꿈에서도 이렇게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걸까. 잠은 죽음을 연습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