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유퀴즈편을 보다가 나온 질문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은 논리로 설득이 되지 않는 존재다.
논리가 필요한 때가 있지만, 이것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논리보다 더 우선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대부분은 결혼을 하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기를 가지기 위함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아기는 필수요소가 아닌 선택의 요소였다.
지금 애인이 없어도 혼자 잘 살고, 이 삶의 패턴이 편하고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갈망하지는 않는 상태였다.
이들은 말했다.
아기를 낳으면 어머니한테 절대 안 맡길꺼라고.
어머니께 용돈도 (최소 기본시급 이상) 드리고, 집안일을 봐줄 수 있는 분을 따로 채용할 수 있지 않는 한 아이는 안 맡기겠노라고.
이것을 할 수 없는 현실과 타협하자면, 0세부터 들어갈 수 있는 어린이집에 아주 어릴 때 부터라도 맡기겠다고.
아기를 직접 키우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주말부부를 하며 내가 아기를 보고 있기는 했으나, 시험준비를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시어머니께 3주간 아기를 맡겼던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수입은 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기에, 부모님 용돈을 드릴 수 없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사실 대기자가 많아서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보내도 하루 2시간 정도로 짧게만 체험하게 하고 싶다.) 나는 죄책감 비슷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풍요롭게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아기를 풍요로운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욕구는 당연하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환경이, 아기가 10살이 되었을 때, 20살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할꺼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경제적 상태가 바뀐다거나, 배우자와 이별한다거나, 가족과 사별한다거나.
환경이 갖춰지면 아기를 낳고 싶다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50세 때 부를 이루고 나면, 아기를 낳을까 싶다. 그 때는 체력적인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아기를 낳기 못할 것 같다는 상상을 감히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 이면에 있는 더 중요한 가치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대로 보인다는 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면, 비교하지 않을 수 있다.
경제적 풍요로움이라는 한가지 요소를 볼 때, 절망 혹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본인이 세상을 보기 나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입장이다.
웃긴 사실은, 우리가 구매하는 대부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가장 싼 것과, 가장 좋은 것의 품질이 가격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가장 싼 식용 설탕과, 유기농 수입 설탕을 비교해보면 가격은 몇십배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설탕이라는 제품을 산 주 목적은 비슷한 활용성을 가진다.
그리고 더 웃긴 사실은, 우리 MZ세대는 경제적 풍요로움에 상관 없이 가장 좋은 것을 이미 누려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월 200만원을 벌며 몇 십만원짜리 식사를 위해 비싼 레스토랑에 가본다거나, 부모님은 감히 구매하지 못할 비싼 음향 기기를 샀던 적이 있다. 우리는 합리적이지 못할 때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번창할 것이다.
지금 겪을 고통과 가난이 무서워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 보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할 두려움을 인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