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물을 위주로 사는 사람과, 사람을 위주로 사는 사람으로 나뉜다.
쉽게 구분하자면 내향과 외향으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고, 사람에 대한 궁금증도 많은 편이다. 예전에는 내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지 자책을 하기도 했으나, 본성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차츰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소극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을 뛰어넘지 못한자의 자기 위로라는 생각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 자신이 이런 사람임을 받아들여보고 나니, '받아들인다'의 의미는 포용하는 것이었다. 내 나름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것, 나를 인정해주는 것, 좀 더 튼튼한 객체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느껴졌다.
오랜 시간 혼자 고여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틀을 넓히고, 재미를 느끼고, 삶의 이유를 느끼는 사람인데, 꽤 오랜시간 '나'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이 없이, 책임이 없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보냈다. 하루하루 꼭 하기로 했던 운동을 하며, 밥을 먹으며, 잠을 자며 기본 욕구에 충실한 채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생각의 초점은 '나', '나', '나' 에게로 쏠렸다.
그러다 문득, 나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생적으로 사람과 교류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성격이 강한데, 혼자 고립되어있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자발적으로 취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흥미의 폭이 넓다보니, 이력서를 넣은 곳이 꽤 많기는 했다.
몇 년 전부터 취업을 하고자 했으나, 계속해서 면접에서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는대로 살다보니 직장이 없는 채로 살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진 경력이 나이에 비해 애매해졌고 그렇게 경력단절여성의 늪에 빠져가는 듯 했다.
'나는 이제 뭘 하며 살지?'
직업을 가지는 길, 공부를 더 하는 길, 예술계로 빠지는 길, 장사를 하는 길, 스타트업을 하는 길.
우리의 미래는 하는 일이 계속 바뀌는, 프로젝트 형태로 간다고는 하지만 뭔가 소속감이 없으니 휑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