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행세 해보았는데요

by 박모카

귀국 3달 전, 집주인에게 내가 집을 내놓아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이전 세입자로부터 물려받은 가구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에 올 세입자가 이 가구를 원한다면 해결되는 부분이다. 또, 이후에 올 세입자를 알아두면, 혹시 이후에 내 앞으로 편지가 오면 (캐나다 정부에서 생각치 못한 편지를 보낼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전달해주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이 집은 시세보다 싸게 나왔기 때문에 세입자가 잘 구해질 것 같았다.


현지에서 많이 쓰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사람들에게 내 글이 노출되는데 딱 하루가 걸렸는지, 다음날 밤에 연락이 우루루 왔다. 집 거래는 구매자 우선이라는 시장이, 렌탈에 있어서는 집주인 우선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여기서는 집을 빌리는 데 입금순이 아니기 때문었다. 집주인은 몇 명의 세입자 후보를 본 다음, 집에 들어올 사람을 자기가 고르기도 한다. 나 역시, 예전에 집을 보러 다닐 때 '이 문서를 작성해줘'라며 집주인이 파일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는 내가 이전 집을 떠나는 이유, 지금 다니는 직장과 업무, 얼마를 버는지, 얼마나 지낼껀지, 이전 집주인 연락처는 무엇인지 등을 적으라고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전 집주인에게 진짜 전화를 해서 이 사람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가격적으로 매력이 없는 집은 '들어올지 생각은 해봤어?'라며 계속 연락이 오기도 했고, 내 수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내가 살던 집은 월세가 저렴한 편이었기에 다음날 오전에 바로 집을 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묻지 않아도 '나는 집에 잘 없고, 근처 00에서 일하고... 여튼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라며 어필을 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소개 문서를 만들어 나에게 건네기도 했다. (나중에 읽어보니 룸메이트를 구하는 문서였긴 하다.)


캐나다에서도 집을 구하는 데에는, 한 달 이상의 기간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8월 입주면 7월 이후에야 집을 검색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이 6월이지만 8월에 집을 구하고 싶은데요..'라고 한다면 '집 구하기 한 달 전에 오세요'라며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집을 3달 전에 내놓았고, 카테고리도 '가구 판매'를 선택해서 올렸다. 즉,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찾기 힘든 루트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문의가 너무 많이 와서 당황스러웠다. 아예 템플릿을 만들어서 '생년월일, 직업, 일하는 곳, 라이프스타일' 등을 적어 메세지를 보내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 생각지 못하게 인터뷰 진행자가 된 것 같았다. 이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자신에 대한 설명을 길게 적어서 보내면, 여러 집주인한테 찔러보기식으로 보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 집에 들어올 확률이 적어보였다. 이런 사람에게는 굳이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가 왜 이 집을 특별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적어준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이 매력적인 세입자로 보였다. 이 집을 꼭 계약할 것 같다고 나 역시 설득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내 직장과 정말 가까워요! 라던지, 내가 들어오고 싶은 기간과 딱 일치해요! 였다.) 나중에 계약을 파기해서 머리가 아플 확률이 줄어든다.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내 집이 2순위인 사람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화를 좀 더 한 경우였다.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묻기보다는, 자신의 상황도 간간히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농구부 선생님이야 -> 그래서 빨래를 자주 돌리기도 해 -> 건조기가 필요해 -> 이 집에 건조기가 있어?, 나는 학생들이랑 필드트립을 자주 가 -> 그래서 집에 잘 없어 -> 나는 당신이 반길만한 세입자라구!) 이 사람은 혼자 사는 가구였기 때문에, 내 집에 들어올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적었다. 굳이 신경을 쓸 이유가 없음에도, 이 사람 생각이 자꾸 났다. (이 사람은 이전 살던 집에서 쓰던 가구를 들고 오고 싶어할까? 이곳에 오게 된다면, 우리 집에 있는 가구는 어떻게 할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이 집을 보고 '정말 예쁘군! 마음에 들어!'라며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 혹은 '이 집에서 걸리는 부분은 건조기네'라면서 어떤 부분에서 우리집을 거를건지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혹여나 하려는 말이 부정적인 것이었어도 그들의 머릿속이 궁금했고, 말을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웠다.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오고싶다고 연락을 할지, 들어오지 않겠다고 할 지 예측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어떤 입장이라도 나에겐 반가운 정보였다.

-내가 머쓱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주는 사람이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도 돈을 줘야한단 말이지? 이것은 가구 값이야?'라고 확실히 확인해주면, 이에 대답하는 그 순간은 지구 밖으로 숨어버리고 싶다가도 나중에는 그 사람이 더 편안해진다.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해 청구를 하는지 설명을 할 수 있고, 나중에 다른 말을 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머쓱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만,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처음 집 소개에 길게 설명을 썼다가도 사족인가 싶어 간결하게만 적었다. 상대가 굳이 묻지 않으면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서였다. 상대가 이것에 대해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메세지를 우루루 받았던 날 바로 다음 날, 4명의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 하지만 다들 계약을 하겠다는 말이 없었다. 하우스 형태의 집이 '싼게 비지떡' 같은 느낌이었던 것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다들 집세가 저렴해서 한 번 와봤지만, 집을 둘러보고 나서는 '그냥 돈 조금 더 주고 깔끔한 곳에서 살자'라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에도 집에 관심있다는 메세지는 자꾸 왔지만 생각보다 매물이 바로 나가지 않았다. 기운이 빠졌다. 이래서 내가 카페 음료를 못 끊나 싶었다. (우울해서 뭔가 달달한 것을 마시고 싶었다.) 사실, 집주인은 우리 이후 월세를 20만원 올렸기에 내가 느꼈던 만큼 다른사람도 우리 집세가 파격적이라고 느끼지는 않는 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여기 밴쿠버에서는 방 1개에 100만원 정도로 집세가 잡혀있다. 그래서 차라리 집을 사고, 그 집에 살 세입자를 구한다면 엄청난 이득이 될꺼라고 혼자 상상했었더랬다. 거의 집을 공짜로 얻는것 아니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집 주인 부부도, 둘 다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방이 9개나 있는 이 집에서 나오는 집세만으로도 먹고 살기 충분한 것 같다며 혼자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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