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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Feb 19. 2019

여행의 의미-보다 많은 이들의 삶을풍족하게:가우디1편

유럽 배낭여행- Spain Barcelona 가우디 건축물: 주택  편

가우디 건축물 첫 번째 편 - 주택 편



바르셀로나에 도착 한 날 밤거리를 따라 걷다, 사람들이 유난히 모여있는 곳이 눈에 띄어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늦은 밤에도 사람들의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던 건물은 스페인의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의 건축물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Casa Batlló)'였다.


하얀색의 해골 모양의 외관과 이와 대비되는 형형색색의 건축물은 그 해괴한 모습에 건축 설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호평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카사 바트요의 밤과 낮(사진 옥별아)

 

숙소로 가는 길에서 마주한 가우디의 작품이자 바르셀로나의 유산 카사 바트요, 이틀 뒤 아침 다시 방문한 카사 바트요는 햇빛이 비추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3일 중 하루는 당일 투어로 일정을 잡았었다. 투어의 주 된 관광장소는 구엘공원과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중간중간 가우디 건축물들을 들러 위치와 간단한 관광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관광투어 이튿날 난 가우디의 주택들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주택들을 포함하여, 가우디가 학생 때 디자인했다는 가로등이 있는 레이알 광장, 그리고 그 옆 바르셀로나의 대표 시장인 보케리아 시장까지를 일정으로 잡았다.


카탈루냐 광장을 중심으로 바닥의 타일은 특별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문양의 디자인과 육각형의 모형 또한 가우디의 작품이다. 밟고 지나가는 곳 카탈루냐 모든 곳, 가우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카탈루냐의 바닥 문양(사진 옥별아)



카사 바트요(Casa Batllo)


가우디 건축물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방문한 카사 바트요(Casa Batllo)는 가우디가 건축한 주택 중 내부가 가장 궁금한 곳이기도 했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건축에 얽혀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 같은 카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를 처음 보면, 카사 바트요 바로 옆에 붙어있는 건물에도 함께 눈이 가게 된다. 독특한 모양의 지붕과 동화에서 나올 법 한 또 다른 건물 한 채, 그 건물이 카사 바트 요의 건축 계기이다. 원래는 밋밋했던 건물을 바트요 부부가, 옆 건물보다 화려하게, 더 높게, 더 아름답게 만들어달라고 가우디에게 재건축을 맡기면서 탄생된 게 바로 카사 바트요이다.

 

카사 바트요 정면과 옆 건물들(사진 옥별아)

건물의 눈에 띄는 특징은 건물 외부는 물론 내부 어느 곳에서도 직선(straight line)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각을 없애고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낸 카사 바트요.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의 시내는 곡선을 따라 흐르는 창문 틈에서 더욱 여유롭게 느껴진다.


카사바트요의 곡선이 흐르는 창문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시내(사진 옥별아)


가우디 건축물들의 특징은 건물에 '빠띠요'라고 하는 중정(中庭)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1900년대 초에 자연 바람을 건물 내에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방문한 카사 바트요 내부는 중정으로 바람과 햇빛이 조절되고 있어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중정을 꾸미고 있는 타일(tile)은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데, 이 또한 가우디의 작품으로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는지에 따라서 타일이 받는 햇빛이 달라진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었다.

 

카사바트요의 중정과 기둥없는 건물 내부(사진 옥별아)

기둥이 없는 건물, 동물의 뼈를 통과하는 듯한 건축물의 내부는 실제로 가우디가 동물의 단단한 짜임새에서 구상했다고 한다.


지붕으로 올라가면 '트랜 카디스' 기법이라고 하는 가우디의 전매 타일 기법으로 가득 꾸며진 옥상이 나온다. 흔히 모자이크 타일 기법이라고도 불리는 트랜 카디스는 색으로 그린듯한 정확하게 퍼즐을 맞춘 타일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섬세함과 정성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

카사바트요의 옥상(사진 옥별아)


바트요 부부가 가우디에게 의뢰 당시 딸에게 들려준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인 산 호르디가 용을 무찌르고 아름다운 공주를 구한 전설을 모티브로 건축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전설에서 용이 흘린 피가 바닥에 쏟아진 자리에 장미 덤불이 자랐고, 호르디는 그중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공주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전설을 그대로 담아, 지붕은 용의 뼈와 비늘, 용에 꽂힌 칼, 그리고 색색의 타일로 용의 피를 표현한 카사 바트요.


오늘날 특별한 날이면 커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밤이면 특별한 프러포즈 이벤트가 매일 진행되기도 하는 곳이다.


 특히 크리스마스에는 바르셀로나의 어느 곳보다 화려하게 꾸며진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는 언젠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인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다시 와도 좋겠구나라는 마음을 심어주기도 했다.


 

카사 밀라의 옥상과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완성된 지붕(사진 옥별아)



카사 밀라(Casa Mila)


카사 밀라(Casa Milà)는 앞서 본 카사 밀라의 가까운 곳 맞은편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실제로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가장 중심이자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 카사밀라와 모습(사진 옥별아)


카사 밀라 또한 가우디의 다른 건축물들처럼 건축 당시에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던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카사 밀라가 완성된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 건물에 입주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철제 발코니와 지나치게 굴곡진 거대한 건물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햇빛을 받으면 물방울 무늬가 바닥에 생기는 입구
카사밀라의 입구와 곡선의 건물 내부


그러나 실제로 거주를 했던 사람들은 가우디 건축의 미적 감각뿐 아니라 편리하고 효율적인 설계와 서비스에 크게 만족했다고 하니 과연 가우디는 사람들의 편견과 환경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낸 사람이었다.


카사 밀라의 옥상과 테라스 전경
연립주택 카사 밀라 내부



카사 비센스(Casa Vicens)


카사 비센스(Casa Vicens)는 가우디가 학생 시절 처음으로 의뢰를 받고 건축한 가우디의 처녀작이다. 가우디의 풋풋한 시절 디자인한 건축물은 과연 그 이후의 가우디 건축물들보다 소박한 느낌이지만, 무언가 사람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특별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우디가 다른 건축물과는 다른 독보적인 건축가로 걸어가게 된 이유를 어쩌면 가우디의 첫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사람이 그리워하고 원초적으로 바라는 것을 건축물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가우디의 처녀작 카사 비센스의 모습(사진 옥별아)


카사 비센스는 집터에 있던 종려나무와 노란 금잔화에 영감을 받아 건축했다고 한다.


자연을 담으려 했을 뿐 아니라 자연을 닮아가려 했던 가우디의 노력은 그의 건축물 곳곳에 반영된다.




구엘 저택(Palau Guell)


가우디의 또 다른 거작인 구엘 저택(Palau Güell)은 가우디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당시 카탈라냐의 거대한 부호였던 구엘 백작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숙박시설 겸 주택이었다.


거대한 입구가 주는 무게감만큼 저택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의 무게도 지금의 가치로는 환산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실내의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들로부터 가우디가 저택에 들인 공을 느낄 수 있다.

 

구엘 저택의 장엄한 입구(사진 옥별아)


당시에는 획기적인 반영이었던 지하주차장이 있는 대저택의 내부에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가구들은 구엘 저택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구엘 저택의 내부 계단과 황금 문과 실내장식


각국에서 초대되어 온 귀빈들을 위한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과 방범 장치들은 구엘 저택의 또 다른 매력이다.


럭셔리 주택으로 설계된 구엘 저택의 모습(사진 옥별아)
구엘 저택의 방범 창과 벽난로와 개인 화장실



이렇듯 저택에 머무는 이들을 위한 가우디의 배려와 더불어 주택에 대한 이해도와 반영도를 통해 가우디 건축의 가치를 알 수 있다.


특히 무엇이든지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한 가우디의 통찰력이 곳곳에 발휘된 구엘 저택이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


구엘 저택은 바르셀로나의 대표 광장이자 신시가지에 있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구엘 저택에서 나와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이자 옛 중세의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고딕 지구가 나온다.


고딕 지구의 라 람블라 거리(Les Rambles) 안 쪽으로 야자수 나무들이 가득한 광장이 하나 보이는데, 이 곳이 레이알 광장(Plaça Reial)이다.

 

라 람블라 거리에서 보이는 레이알 광장(사진 옥별아)


바르셀로나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도시로 관광객들이나 현지 가이드들을 표적으로 도난이나 폭력 범죄가 빈번하다고 한다.


당일 투어 당시 담당 가이드도 바르셀로나의 치안이 좋지 않은 편이니, 항상 주의를 살피고 늦은 밤 이동은 삼가라는 당부를 했다. 특히 조심해야 할 곳 중에 하나로 레이알 광장을 강조했는데, 현지인들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사람이 드문 시간에는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낮에 방문한 레이알 광장은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레이알 광장에는 눈에 띄는 검붉은 색 가로등이 있는데, 가우디의 작품이다.



실제로 마주한 가로등은 시설물이라는 느낌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웠다. 가로등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작품의 의미를 찾기도 할 것이고, 자신의 감성으로 해석을 덧댈 것이다.


나에게 검붉은 색의 가로등은 정열(passion)로 느껴졌다.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6개의 강렬한 수호자의 눈. 그것이 가로등으로부터 얻은 감명이었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시민들의 삶을 응원했던 가우디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로등이 있는 곳은 이 레이알 광장뿐이며, 이 광장에도 단 두 개의 가우디 가로등만이 있다. 하지만 두 개의 가로등만으로도 광장이 꽉 차는 듯 가로등이 주는 존재감이 가볍지 않다.


레이알 광장에 있는 가우디 가로등(사진 옥별아)


가로등은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Naver)의 날개 달린 모자로도 유명한 헤르메스의 하데스 투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려 하는 가로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던 가우디의 신념이 담긴 가로등이다.



그의 그러한 철학은 그의 건축물들에 반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으며, 거리 안 쪽의 작은 광장인 레이알 광장의 어둠을 각성(awakening)시킨다.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


레이알 광장을 나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스페인 시장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의 입구가 보인다. 보케리아 시장은 하루 방문자만 해도 30만 명이 넘는 대형 시장이다. 시민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market)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입구와 과일가게(사진 옥별아)
보케리아 시장 디저트 판매점과 생과일 쥬스(사진 옥별아)


형형색색의 빛깔 좋은 과일들과 향이 듬뿍 느껴지는 생과일주스 전문점들로 가득 찬 입구를 들어서면 시장 안 쪽에는 생선, 정육코너가 있다. 또한 젤리, 쿠키, 케이크 등 디저트 류들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막대 사탕 츄파츕스(Chupa Chups)가 눈에 띈다.


츄파 춥스는 1958년부터 바르셀로나 기업가 엔리크 베르나(Enric Bernat)가 처음 생산을 시작했으며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로고를 그렸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불문하고,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식료품들이 가득한 보케리아 시장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했다.


추파춥스 사진과 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의 인물, 1925>




바르셀로나 대 성당(Barcelona Cathedral)


고딕지구의 또 다른 명소인 바르셀로나 대 성당(Barcelona Cathedral)은 13세기 말에 착공하여 약 150년 후인 15세기 중반에 카탈루냐 고딕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대성당은 구시가지의 노바 광장에 있으며 광장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오고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탑의 높이는 70m로 실제로 마주한 성당은 오랜 세월을 버틴 중후함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사진 옥별아)
구시가지 노바 광장과 고딕 성당(사진 옥별아)




카탈루냐의 독립운동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Caataluna) 자치 주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러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자치의회에서 독립을 선언했으나 그 해 11월 8일 스페인 정부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15세기 스페인 통일되기 이전 카탈루냐 지역은 아라곤 왕국의 공국이었으며, 오늘날 카탈루냐 지역의 20%는 카탈루냐 혈통을 계승하며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국기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바르셀로나, 그 카탈루냐 문예부흥의 주역이자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세계문화유산을 건축한 안토니 가우디. 그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가난한 집안의 구리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탈루냐 지역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고자 했던 어느 위인의 꿈과 소망 덕분이 아닐까?


가우디 구엘공원 정원에서(사진 옥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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