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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Aug 09. 2022

그날 병원에 의사가 없었던 진짜 이유

by 배뚱뚱이

얼마 전 한 대형 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에 수술할 ‘뇌혈관 외과 의사’가 없어 숨진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많은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댓글은 ‘의사는 나쁜 놈’으로 비난의 여론이 높아졌죠. 

그런데 여러분은 ‘뇌혈관 외과’란 과를 들어보셨나요? 의사들이 자신의 과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그리고 뇌혈관 외과가 무엇이고 그날 병원에 의사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 우리나라 전문의 면허에 ‘뇌혈관 외과’는 없다. 

이 사건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중에 가장 어이없던 내용은 ‘역시 외과의사가 부족하니까 뇌혈관 외과 의사가 안 나오는 것이다’였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면허로 인정하는 우리나라 전문의 종류는 총 26개입니다. 이 중에 ‘뇌혈관 외과’는 없습니다. ‘뇌혈관 외과’는 26개 전문의 과목 중 신경 외과의 세부 분과입니다. 즉, 외과 의사가 부족한 것과 뇌혈관 외과 의사가 부족한 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신경외과는 인기 있는 과이기 때문이죠. 

뇌는 우리 몸의 중추 신경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뇌와 뇌혈관 관련 수술은 신경외과에서 합니다. 또, 척추 신경 또한 우리 몸의 중추 신경이라 척추 관련 수술도 신경외과에서 하죠. (단, 척추 수술은 정형외과에서도 합니다) 신경외과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에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배우기 때문에 신경외과 전문의는 이 두 분야 모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전문의가 된 후 뇌를 더 깊게 전공하려는 사람보다 척추를 전공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는 뇌 분야의 일할 자리가 압도적으로 부족하고, 그에 비해 일은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날 뇌혈과 의사가 병원에 없었다기 보다 뇌혈관 의사가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본질입니다. 일할 자리가 부족해 지원이 적고, 지원이 적다 보니 또 일할 자리가 부족하고...악순환의 고리와도 같죠.


# 의사는 언제 본인의 진로를 결정할까? 

의사는 어떤 과의 의사가 될지 언제 결정할까요? 의사의 수련 체계에 대한 소개가 될 것 같습니다.  

1년에 한 번, 약 3,000명의 의사가 나옵니다. 위의 표를 보면 의사들이 어떻게 본인의 진로를 정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듯합니다. 각 네모의 크기는 의사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비율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보통 의대 (차의과대학은 의전원) 전체 정원이 전국 40개 (41개였는데 서남대 폐교) 의대를 통틀어 3,000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우리나라에서 인정해주는 의대를 졸업한 사람은 의대 정원과 무관하게 의사국가고시에 응시 자격이 주어집니다.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의 의대를 졸업한 경우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만, 선진국에서 의사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에 이 수는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의사 시험에 합격을 하면 매년 약 3,000의 의사가 배출이 되는데 대부분은 인턴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턴은 일반 기업에서의 인턴과는 아예 다른 독특한 제도입니다. 한 병원에 거의 살면서 (그래서 인턴은 무조건 병원에서 숙소가 나옵니다) 과를 돌아가면서 일을 합니다. 그래서 많이 힘듭니다. 그렇지만 이 인턴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과 전문의 (레지던트)를 지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98% 이상은 인턴을 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인턴을 하지 않고 바로 산업전선 (병/의원 취업 또는 개업)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환자의 질환을 보는 의사가 아닌 미용 (머리를 심거나, 레이저를 쏘거나, 보톡스, 필러를 넣는) 쪽에 취업합니다. (저는 그러기에는 너무 뚱뚱하고 멋이 없고,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이런 예외적인 과정을 선택하지는 못했습니다. ^^)


# 1주일 100시간의 노동강도, 그럼에도 인턴을 지원하는 이유

인턴이 엄청 힘들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인턴을 할 때도(2011년)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했지만, 근무시간이 1주일에 거의 100시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대형병원 인턴들은 그렇게 살죠. 일이 많지 않은 병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병원들은 인턴 이후에 갈 곳이 없어 선호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턴은 동일 병원의 (레지던트) 채용 전환형 인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류상으로 레지던트의 지원은 제한 없이 모든 병원 인턴 출신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기 병원에서 일했거나 자기 대학에서 졸업한 사람을 우선 채용합니다. 똑똑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에 추가로 ‘성실하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을 사람’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죠. 앞서 설명한 쉬운 인턴 생활을 할 수 있는 병원 대부분은 가정의학과, 내과, 외과의 레지던트 정원이 소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이런 과가 아니라면 레지던트는 포기하고 진짜 ‘인턴’만 하고 산업전선 (병/의원 취업 또는 개업)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죠.

피부과와 정신과 등 인기 있는 과는 의대 입학 초반부터 동기들 사이에서 눈치 싸움이 치열합니다. 솔직히 저도 피부과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1등은 우영우’처럼 늘 1등을 하던 친구가 입학 때부터 “나는 피부과”를 선언했죠. 그래서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상대적으로 외부 지원자에게 공평하다고 알려진 병원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 졸업한 병원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물론 나와서도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인기과의 경우 교수님들이 레지던트들에게 ‘이번 전공의(레지던트) 선발에서 우리 인턴이나 졸업생 중에 쓸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지원율보다 졸업생 중에 몇 등이 우리 과에 지원했는지는 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죠.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본과 3, 4학년 실습 때부터 먼저 연락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들이라면 인턴 실습 성적이 조금 나쁘거나, 12월에 보는 레지던트 선발 필기시험 성적이 다소 나빠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어레인지’라고 합니다. (또는 픽스턴(Fixed intern) 이라고도 하죠)


# 전문의가 끝이 아니다! 분과/세부 전공

이렇게 들어간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마치면 이제 전문의 시험을 보고 마침내 전문의가 됩니다. 개업이 중심이 되는 과들을 선택한 의사들은 전문의가 되는 순간 대부분이 산업전선으로 배출됩니다. 

그런데 주요 메이저 과(요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들은 추가 수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과 전문의를 땄지만 내시경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화기 내과 전임의 수련을 해야 합니다. 외과 전문의를 땄다고 해도 어느 쪽 수술을 더 많이 할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큰 병원에 남아 전임의를 해야 합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뇌혈관 외과도 마찬가지로 신경외과 전문의를 딴 후 추가 수련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과들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바로 개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제 전공인 방사선종양학과는 특정 분야를 지정해 전임의를 하지 않습니다. 각 병원에서 필요한 분야를 맡고, 교수님들의 진료를 보조합니다. 진료를 하며 교육을 함께 받는 셈이죠. 다만 제 전공은 개업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병원을 오가면서 다니시면서 핵의학과 의원, 방사선종양학과 의원 이런 병원을 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그래서 많이 후회도 했지만, 이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습니다. 이런 길고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한 대학병원의 전문 교수가 탄생을 합니다.


# 그날 뇌혈관 의사가 병원에 없었던 진짜 이유 

의사 면허를 받고 바로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 병원 시스템의 특수성으로 결국 의사 면허를 딴 후에도 긴 교육 과정을 거쳐야만 진짜 환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의사’의 숫자만 늘려서는 뇌혈관 의사가 없어 숨진 간호사와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글이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늘리고 이번 이슈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PS. 저도 레지던트 시험 떨어졌을 때, 지금의 전공을 하지 말고 재수를 하였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늘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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