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tay Cool
서른이 되던 해에, 조카가 태어났다. 이미 숱하게 많은 오촌 조카 말고 친 조카, 더군다나 하나뿐인 언니의 첫아이. 예정일을 넘기며 애를 태우다 유도분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이 녀석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로 날을 잡고 태어났다. 그리고 딱 내 얼굴을 하고 나왔다. 우리 자매는 외모도 성격도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어린 시절, 언니는 예쁘고 귀여운 외모로 어디서든 관심을 받았다. 그런 예쁜 언니는 종종 못난이 동생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쳇. 그런데, 그녀의 첫째 아이가 못난이 동생 얼굴을 하고 나오다니. 에잇 고소해. )
갓난쟁이일 때야 얼굴이 수시로 변하는 통에 가족 중 그 누구도 이 아기가 못난이 이모 판박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했다. 이 아이가 8살 되던 무렵, 옛날 가족 앨범을 들춰 보여주던 외할아버지에게 이 아이는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할아버지 나 이 사진은 언제 찍었지?’ 그 흑백사진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9살 못난이 이모였다. 제 눈에도 내 얼굴이 자기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내 분신 같은 첫째 조카. 귀여워. 음하핫)
우리 자매는 둘 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평범한 외모의 엄마를 닮았는데, 뜯어보면 언니는 부모님 예쁜 데만 모은 얼굴, 나는 못생긴 데만 모아놓은 얼굴에 가까웠다. 하지만 언니 유전자 어디엔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발현되지는 않았던 못난이 외모 유전자들이 그녀의 첫째 아들에게서 만개한 것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아무튼 나는 배우 박근형과 쌍둥이로 오해받는 아버지와는 참으로 무관한 외모로 살아왔고, 외모가 닮지 않았으니 다른 무엇이 닮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어느 해 추석 연휴 끝자락. 해외도피 계획에 차질이 생겨 지긋지긋한 잔소리를 들으며 연휴를 버텨낸 후였다. 볕 좋은 오전, 아침을 반듯하게 챙겨 먹고 설거지도 마쳤다. 모든 잔소리와 집안일을 떨치고 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연휴가 길었던 탓일까? 자라난 손톱이 살짝 거슬리기 시작했다.
거실 베란다 창 옆에 신문을 크게 펼쳤다. 노곤하게 아침 햇살 받으며 손톱, 발톱 정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이 들면서 발톱 모양도 조금씩 변한 탓에 하나하나 그 생김에 맞게 잘 다듬어 주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깔끔하게 손발톱을 다듬고 펼쳐 둔 신문을 정리하려는 순간, 주름진 큰 발이 불쑥 들어왔다. 아버지 발이다. 늙으니 허리가 뻣뻣해져 발톱 깎기도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셨다.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이니 군말 않고 아버지 발톱을 하나씩 다듬어 나가는데... 하악... 어쩜 이리 내 발톱이랑 똑같이 생겼을까...
볼록하게 적당히 예쁘게 생긴 엄지발톱, 발톱 본체와 하얗게 자라나 온 부분의 경계선이 파도 모양으로 생기는 검지 발톱, 크기가 제일 작은 중지 발톱, 제일 크고 볼록하게 잘 생긴 약지 발톱, 딱 절반이 결이 거칠게 자라는 새끼 발톱. 사이즈만 다를 뿐 형태나 자라는 모양이 전부다 정말 똑같다.아버지가 다듬어진 발톱을 보고 아주 흡족해 하셨다. 큰딸이 깎아주면 시간만 오래 걸리고 살점을 뜯기기도 했는데, 작은 딸이 깎아주니 아주 마음에 쏙 든다고. 언니 발톱은 나랑 완전히 다르게 생겼으니 아마 꽤나 힘들었을 게다.
부모님 못생긴 데만 닮았다 생각하고 자랐는데 서른 살 넘어가면서 아버지 닮아 인물 좋다는 얘기도 종종 듣게 되더니 결국 내 발톱도 나이 들면서 아버지 발톱 닮아가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아버지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걸 매년 조금씩 확인하고 있다. 몸이 어딘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아버지가 겪었던 증상들과 유사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버지 발톱을 깎아드릴 때마다 여러 가지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시는 동안 잔병도 큰 병도 없이 건강하시기를.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