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흔살 어른이
'드르륵'
교실 뒷 문이 열린다.
'수업이 한창인데 누구지?'
‘백두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 주임의 별명은 '백두'였다. 나이가 지긋이 든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머리가 백발이었다. 그래서 ‘백두(白頭)’라 불렸다. 그 시절 학생주임은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 손엔 작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두발이나 복장이 불량한 아이들을 지적했다. 사랑의 매질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교실 뒷문이 열린 그날, 학생주임의 손에는 몽둥이가 아닌 가위가 들려 있었다.
"잠시 두발 검사를 하겠습니다."
학생 주임은 수업 중이던 선생님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보통 두발 검사는 수업이 한창 진행 중 예고없이 뒷문으로 들어온다. 앞문으로 들어올 경우 몇몇 용감한(?) 학생은 쇼생크 탈출과 같이 뒷문으로 몰래 도망친다. 앞문은 수업 중인 선생님이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학년의 12반을 한 시간에 끝낸다. 만약 1시간에 끝내지 못한다면 쉬는 시간을 틈타 양호실이나 화장실로 피신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이야 학생 인권이다 뭐다 시끄럽겠지만, (라떼는) 두발 검사 때면 선생님들이 가위로 학생들의 머리를 자르곤 했다. 무자격자의 가위질은 쥐가 파먹은 영구 머리를 만든다. 머리를 잘리고 학교 앞 이발소를 갈 때면 이발소 아저씨는 얘들 머리를 왜 이렇게 만들어 놓냐며, 뭘 해도 멍청한 스타일이 나온다고 학생들과 같이 화를 내주곤 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1주일만 버티면 다음주 여고 축제에 멋부리고 갈 수 있었는데....'
하지 말라면 더 해야 하는 고등학생 시절, 지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지만, 스포츠 머리에 앞머리와 구렛나루만 유독 긴 스타일이 남자의 자존심이고 학생 최고의 멋이었다.
여고 축제를 얼마 남지 않았던 때라 나 같이 남자의 자존심을 기르던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그날 학생 주임의 무자비한 가위질에 친구들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친구들의 자존심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내 머릿속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얼짱각도란 말도 없었던 시절, 나는 어떻게 하면 머리가 짧아 보일 수 있는 각도로 학생 주임을 바라볼지 잔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드디어 내 차례. 모든걸 체념하고 나의 마지막 자존심 앞머리와 구렛나루와 작별을 하려는 순간, 학생 주임이 나를 지나간다.
'뭐지? 무슨 일이지?'
공포의 두발검사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됐다. 머리가 잘려 영구가 된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나는 왜 학생주임이 그냥 지나친거냐고? 하지만 나도 그 이유를 알리가 없다. 학생주임한테 촌지를 준것은 아닌지 의심이 증폭되고 있는 순간, 한 친구가 모두가 납득할 만한 명쾌한 해석을 내놨다.
"얘 머리 잘 봐바. 햇빛이 비치니 머릿속이 다 비쳐서 대머리 같아!"
학생주임은 이날 훤히 보이는 내 머릿속이 불쌍해서 일까, 아니면 얼짱 각도로 인한 착시효과로 정말 머리가 짧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 나는 탈모 의심자가 됐다.
# 탈모 의심자의 미용실 선택법 <가장 중요한 첫 방문>
20년 넘게 탈모 의심자로 살아왔지만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헤어젤이나 왁스, 요즘은 포마드로 매일 아침 세팅을 하고 집을 나선다. 미용실이나 바버샵은 한번 단골을 맺으면 몇 년을 같은 사람에게 맡기곤 한다. 하지만 내 머리를 아무에게나 맡기지는 않는다. 탈모 의심자를 호구로 보는 헤어샵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샵을 방문하면 이발사와 미용사는 나를 단골 고객을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한다. 직업, 성격 등을 고려해 고객이 만족하는 최고의 헤어 스타일을 선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같은 경우도 샵에 처음 갈 때면 평소의 옷차림은 어떤지,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등 이발사, 미용사와 합을 맞추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나 같은 탈모 의심자를 볼 때 약을 팔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하다. ‘어~ 지금 탈모가 조금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1~2년이면 탈모 심하게 오겠어요’라고 한다. 호응을 좀 해주면 호갱을 만났구나… 라며 뭔가를 하나 둘씩 꺼내온다.
대표적인 것이 두피케어다. 한번에 10만원 정도고 5~6번은 받아야 하는데, 오늘 결제하면 20%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20대 중반,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한번 당한 적이 있다. 현미경 같은 걸 들이밀며 두피 검사를 하고는 탈모가 시작된다며 겁을 줬다. 나는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두피 케어를 20% 할인된 가격에 신청을 했다. 역시 나는 운이 좋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는 호갱이 됐다.
지금은 이런 호객 행위에 당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동네에 생긴 바버샵을 갔는데, 식상한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제가 원래 손님들한테 이런 거 잘 권하지 않아요. 이거 팔아서 제가 남는 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이건 제약회사에서 만든 거라 믿음이 가서 손님한테 추천해 드려요. 아무래도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아서요”
‘내가 제약 회사 다니는데…’ 어떤 제약회사 제품인지 물어봤다.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 바버샵에 가지 않았다. 사실 머리 스타일도 최악이었다.
# 탈모 검사는 피부과에서, 헤어 스타일은 바버샵에서
지금은 2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바버샵이 있다. 이발사와 손님의 합을 맞추는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데 이곳은 전혀 호객 행위가 없었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다.
“혹시 제가 머리숱이 없어서 걱정인데 탈모일까요?”
그러자 그 이발사는
“자세한 건 피부과 가서 검사 받아야겠지만, 제가 보기엔 괜찮은데요? 고객님 머리는 바버들이 좋아하는 머리예요. 머리숱이 너무 많으면 스타일이 잘 나오지 않거든요. 그리고 반곱슬에 머리카락도 가늘어서 원하는 데로 스타일링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지금껏 이곳의 단골이 됐다. 그리고 첫 방문에 아무도 권하지 않았던 스타일링 제품을 하나 사왔다.
두피 관리 호갱이 아닌 다른 호갱이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나는 이 바버샵에 만족하며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내 머리를 맡기고 있다. 아무튼 나는 탈모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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