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허당약사
어지간한 영화는 다 봤다고 자부하는 허당약사는 말 그대로 영화광(인)입니다. 이런 허당도 눈 가리고 귀 막으며 외면하는 장르가 있으니 그것은 공! 포! 영! 화! 왜 여름만 되면 극장마다 앞다투어 공포영화로 도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실제가 아니라고, 수많은 스텝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뿐이라고 아무리 세뇌를 해도 여전히 무섭습니다. 보고 나면 화장실도 못 가요. 더군다나 야심한 밤에 홀로 공포물을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그동안 간간히 ‘에일리언’, ‘드라큘라’, ’여고괴담’, ‘부산행’ 등은 봐 왔습니다만, 몇 년 전 ‘곡성’을 보고 나서는 공포영화에 대한 미련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습니다. 억울하게 끌려간 삼부자에게 호되게 욕을 먹은 데다가 필자 또한 무시로 영화 장면이 떠올라 가위에 눌릴 정도였으니까요. (잠깐 여기서 ‘가위눌림’은 배뚱뚱이님 글을 참고해 주세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의 편집장님이 납량 특집이라며 좀비 씨 상처를 좀 봐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뭣이 중헌디!!
어느 푹푹 찌는 여름날, 점심시간이 되어 약국에 환자가 뜸해지자 허당은 한가로이 판매대 위에 상비약을 보기 좋게 정리합니다. 밥도 먹고 정리도 마쳤겠다, 커피 한잔을 들고 밖을 보니 타는 듯한 더위를 식혀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네요. 비가 오려나 싶어 우산 꽂이를 문 옆에 두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퍽! 하고 흡사 고깃덩어리가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등골이 서늘한 게 느낌이 싸~합니다. 눈동자만 굴려 슬쩍 보니 아침내 닦아 놓은 유리창에 신선도 한참 떨어지는 검붉은 핏자국이 낭자합니다. 머리칼이 쭈뼛 서고 닭살이 쫘악 올라옵니다. 하지만 허당약사, 당당하게 부들부들 떨면서 속으로 외쳐봅니다. “아니, 어느 행인님이 이런 짓을 하신.. 헉! 조조조조조….”
대낮에 이게 웬 영화 같은 날벼락인가요. 그 와중에 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나갈 수 있다는 옛말을 되새기며 약국 문을 부여잡고 좀비 씨의 눈을 쏘아봅니다.
‘좋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다. 이에 물리면 안 되지)’
죽음을 앞두고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후회막급 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려던 찰나, 어라? 좀비 씨 눈이 좀 슬퍼 보입니다. 얼굴을 뒤덮은 상처와 흉터로 일그러진 눈에는 고통이 가득하고 입은 벌어진 채로 굳어서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피투성이 얼굴을 유리에 대고 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드… 들어오겠다고요?”
손짓 몸짓해가며 두 가지 약속을 지키는 조건으로 문을 열어주기로 합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을 것, 절대로 허당을 물지 않을 것’
막상 좀비 씨를 약국 안으로 들여놓고 자세히 살피다 보니 좀비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어느새, 허당의 직업적인 오지랖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기선을 뺏긴 좀비 씨는 허당의 끝없는 잔소리에 어이가 없는 듯합니다.
# 지저분한 상처를 어떻게 소독하면 좋을까요?
우선 식염수로 피를 닦아 내고 상처 사이에 끼인 이물들을 깨끗이 제거합니다. 흔히 상처가 나면 다급한 마음에 알코올이나 과산화수소수를 들이붓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상처부위에 자극을 주어 엄청 따갑고 쓰라려서 좀비 씨처럼 입이 떡 벌어지게 됩니다. 상처는 흐르는 물이나 식염수로 닦고 소독약은 상처 주변에 바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소독약은 포비돈 요오드, 벤제토늄, 클로르헥시딘 등을 주로 사용합니다.
만일 염증이 생겨 상처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른다면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상처 주변에 항생제 연고를 발라줍니다. 항생제 연고는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성분도 있고, 의사 처방이 필요한 성분도 있으니 꼭 약사나 의사와 상의해 주세요.
# 이마에 피가 안 멈추는데 지혈제를 써야 하나요?
누구나 한 번쯤 책장을 넘기거나 가위질을 하다 손이 베이면 얼른 입으로 가져가 빨아먹어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아까운 내피의 찝찔한 맛을 보며 이게 철 맛이구나 하죠.
“어허! 좀비 씨 입맛 다시는 것 같은데 과산화수소수 큰 병 나갑니다! 물지 않기로 약속한 거 잊지 말고 잔소리마저 들으세요.”
아무튼, 피가 나면 상처 부위 혈관이 수축되면서 지혈 단계가 작동하여 자동적으로 지혈됩니다. 일부러 지혈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특히 가루로 된 지혈제를 뿌리면 피는 빨리 멎지만 상처에 들러붙은 가루가 잘 제거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만일 피가 안 멈추면 그 부위를 밴드로 압박해서 지혈을 돕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물론 출혈이 심하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 딱지가 생겨야 흉터가 안 남나요?
보통의 상처는 소독을 하고 딱지가 앉기 전에 습윤밴드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흉터 없이 잘 낫습니다. 습윤밴드의 보호 아래 진물이 충분히 머물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거죠. 2~3일마다 밴드를 갈아주면서 새살이 차오를 때까지 드레싱 해주면 됩니다. 요즘엔 습윤밴드의 사이즈와 모양이 다양하게 나오니 더 이상 거즈에 진물이 말라 붙어 울며불며 드레싱 할 필요가 없습니다. 습윤밴드가 노래하는 밴드인 줄 알고 있는 좀비 씨 얼굴 상처는 딱지가 이미 생겨서 아무래도 흉터가 남게 될 것 같습니다.
# 볼에 생긴 흉터는 안 없어지나요?
이제는 거의 울먹이는 좀비 씨, 걱정마요. 여기는 병 주고 약 주는 허당약국이잖아요. 흉터 케어는 상처의 딱지가 떨어지고 난 직후 또는 수술하고 실밥을 풀고 난 직후가 중요합니다. 자, 흉터 케어 제품도 여러 가지 성분이 있으니 잘 골라서 치료해 봅시다.
세파연조엑스 복합제(세파연조엑스+헤파린+알란토인)는 콜라겐의 과다 생성을 억제하는 성분이다 보니 켈로이드처럼 튀어나온 흉터에 효과가 있습니다. 덱스판테놀 복합제(덱스판테놀 +헤파린+알란토인)는 피부 재생을 돕는 효과가 있어서 색소침착이나 움푹 파인 흉터, 여드름 흉터에 좀 더 맞습니다. 이 연고들은 하루에 2~3번 정도 마사지하듯 정성껏 문질러서 사용해야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최소 2~3개월 이상 매일 빠지지 않고 발라야 효과가 있습니다.
실리콘 제품은 상처부위의 수분을 유지해 주고 콜라겐 합성을 억제는 기능이 있어서 궁극적으로 피부를 평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붙이는 시트와 바르는 겔 제형이 있으니 흉터 부위와 목적에 맞게 선택하면 됩니다. 실리콘시트는 하루 12~24시간 동안 붙이고 있어야 하고, 실리콘 겔은 하루 2회 정도 얇게 바른 후 마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 제제도 2~3개월 이상 꾸준히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좀비씨 볼에 난 흉터를 보니 상처가 깊고 딱지가 여러 번 떨어진 것 같네요. 파인 곳과 튀어나온 곳에 각각 맞는 연고를 매일 바르고 울퉁불퉁한 곳에는 실리콘 시트를 붙이면 좋겠어요. 진득하게 3개월 이상 치료해야 하는 것 명심하고요. 해도 해도 안 되는 흉터는 팔자다 생각하지 말고 테헤란 언니 피부과에 찾아가세요. 좀비 전문이십니다.
<6개월 후>
약국 밖에서 누가 기웃기웃하는데 척 봐도 훤칠한 젊은이입니다.
말 못 할 약을 사러 오셨나, 왜 안 들어오고 눈치만 보실까?
‘앗! 저 눈동자는 조조조조조…‘
약국 문을 열어주자 더 이상 좀비가 아닌 좀비 씨가 머쓱한 표정으로 들어옵니다. 이마의 상처는 흉터 없이 잘 아물었고, 검붉은 핏줄 자국도 자취를 감춘 데다가 볼의 깊은 흉터와 울퉁불퉁했던 피부도 매끈해졌습니다. 하루도 잊지 않고 매일 알려준 대로 치료하고 자외선 차단제도 열심히 발랐다고 하네요. 헌데, 허당 약사의 폭풍 칭찬을 듣던 좀비 아닌 좀비 씨 무슨 일인지 얼굴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저기, 내 흉터를 다시 돌려줄 수 없나요?”
이유인 즉,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해진 좀비 씨를 더 이상 충무로에서 불러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를 어째, 허당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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