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갈 거예요. 무조건.
B의 기록
나의 방황과 공허함을 끝낼 수 있는 방법. 이거다 싶었다.
워케이션을 주제로 작성한 첫 번째 브런치 글에 있는 문장으로 내가 이 워케이션에 기대했던 부분이다. 무기력함과 제한적인 사회활동에서 시작된 커리어적인 방황과 일상의 공허함을 해소하는 것.
제주도에 다녀온 지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과연 저것이 해소되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음, 어느 정도 해소된 것도 있고 더 심란해진 것도 있고.”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시시각각 변하고 그에 따라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또한 비어있는 일상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찔러보며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고작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살다 온 것으로 내 삶이 바뀌었다거나 자아가 성장했다거나 하는 엄청난 결과는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바람이 불었다.
첫 번째 바람은 나의 생활 습관에 불었다. 제주도에서의 생활 루틴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꽤나 잘 유지되고 있고 이제야 나는 늦잠 자는 시간 아침 시간을 아까워하고 점심시간에 침대에 누워만 있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아낀 시간을 활용해서 더 많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고 그 외에도 더 생산적인 일에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여러 다원과 찻집을 돌아다니며 차(tea)의 매력에 빠져 찻집 투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기도 했다.
이렇듯 나의 일상은 새로운 콘텐츠와 경험으로 채워지며 다채로워지고 있으며 나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성이 매우 만족스럽다.
두 번째 바람은 커리어 설계에 불었다. 우선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에 사무실의 위치, 멋있는 사옥, 사내식당 여부는 사라졌고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리모트 근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지로 옮겨갔다.
먹고사는 분야에 있어서 인터넷만 잘 터진다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선택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는 점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아직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완벽하게 디지털 노마드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위해서 한 달에 얼마의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업무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의 숙소가 필요한지와 같이 구체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기준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게 디지털 노마드로 정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은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한 달 간의 제주살이가 끝나고 J와 나는 회사 동료 이상의 친구 관계가 되었다. 업무와 일상을 해내는 모습을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보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삼시 세끼를 같이 먹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깊어졌다.
무엇보다 매일의 루틴을 같이 성공적으로 해내고 집으로 복귀하고 나서는 이렇게 함께 글을 쓰며 같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깊어진 신뢰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J와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 확대되며 시너지를 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반대로 사적인 관계에서 시작해도 공적인 관계까지 아우르며 성취감을 나누며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여행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 그 자체로도 친구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이지만 함께 목표를 세우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 더 발전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탄탄한 신뢰와 성취감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친구 관계는 살면서 어려운 일을 직면했을 때 그를 이겨내는 힘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그냥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문제 해결 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절친 몇 명과 진행하고 있는 재테크 스터디를 시작했다. 같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합쳐져 강한 동기부여를 받으며 성실하게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꼬드겨서 다양한 일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들을 그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100점 만점에 150점짜리 워케이션이었다. 벌써 22년의 3월이 그리울 것 같지만 다른 도시와 나라로 더 많이 돌아다닐 예정이니 앞으로의 워케이션을 기대하고 계획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지.
28일간 머물렀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는 날에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썼던 글이다.
J와 나의 첫 번째 워케이션은 적당히 넘치도록 성공적이었다. 물론 다음 워케이션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쯤이면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워케이션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또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설레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