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미운 정이 들어가고 있다. 나는 분명 이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싫고, 개저씨들에게 시달린 후유증으로 악에 받쳐 있는 상태인데 그래도 여기서 보낸 시간만큼 정이 쌓여가는 것 같다.
회사가 나쁜 건 아니야. 나쁜 회사는 아니지. 자꾸 회사를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 망할 걱정 없는 회사. 직주근접이 나쁜 것도 아니고,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오히려 없어서 문제지). 작정하고 놀려면 아주 팽팽 놀 수 있는 환경인데, 그게 뭐가 나빠?
오늘은 오전에 욱해서 이력서를 두 통 넣었는데 넣으면서도 1) 안 되겠지 2) 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여기 주저앉아 뭉개고 싶은 걸까? 아니면 계속 중꺾그마 마인드로 고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널을 뛴다.
이곳은 결혼 후 네 번째 회사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회사 그만두고, 이직했다가, 또 이직하고, 결국 이 회사에 왔다. 남편은 나의 이직병을 너무도 잘 안다. 이직 이직 노래를 부르다가도 맘 잡고 잘 다녀야지, 하면 개가 똥을 끊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데 최근 박찬욱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관심이 생겨 구매한 소설이 있다. 번역가 이름이 낯익었다. 대학 시절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출판사의 책을 주로 번역했던 번역가였다. 이 분이 번역한 책을 읽고 나는 장래 희망을 구체화시켰었다.
낮에는 출판사에서 교정 보고, 퇴근 후 밤에는 내 글을 써야지. 이런 로망을 가슴에 품었었다. 20년 전 그때 그 시절과 그 마음이 떠올라 남편과 아이에게 얘기를 들려줬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엄마 대학 때 좋아하던 번역가였고, 그때 그 출판사 이름은 뭐고, 엄마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걸 꿈꿨었어.
그래서 엄마 어떻게 됐어? 출판사에 갔지. 여러 출판사에 다녔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엄마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
"당신은 거기가 딱이야"
남편이 말했다. 어디서도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하는 내가 지금 최고조로 까대는 회사인데 남편은 지난 4군데 회사를 비교할 때 지금 회사가 가장 나아 보인다고 했다. "사랑하시죠?"라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나는 이 회사에 대해 그 질문을 받는다면 똥 씹은 표정과 함께 왜 저딴 질문을 하냐는 의문을 품겠지만 사랑은 한다, 사랑하는 걸로,라는 답변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