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꼬박 4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 코로나에 폐소공포까지 겹쳐 극장은 이제 기억 한편으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다행히 많이 나아져서 남편, 아이와 함께 세 가족 완전체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갔다.
영화에서 주인공 라일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 중에 가슴 미어지게 만드는 대사가 있다. "난 왜 이모양일까." 내 아이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되면 어쩌지, 분명하게 될 텐데 싶어 공감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 말이 지닌 힘이 너무 커서, 아이가 스스로를 "이 모양"이라 여기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상황과 주변인들로부터 아이를 반드시 벗어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모양일까. 내가 지금 이 회사를 다니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난 왜 이모양일까?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어차피 안 되는데...
지난주 일이다. 마음이 급했다. 뭐라도 새롭게 기획해서 내 커리어에도 도움 되고 직원들에게도 도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인정욕구인지 선의인지 하프 앤 하프 어디쯤인지 나도 모를 감정과 생각의 기원이 일단 해 봐! 하고 대책 없는 파이팅을 주입시켰다.
드릉드릉했다. 제도 개편안을 상사에게 가져갔다. 상사는 그날의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컨펌 속도와 피드백 방식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고침을 누르는 스타일이라 오전에 컨펌받은 내용은 오후에 "정말 이렇게 진행하면 되는지" 확인 후 못을 박아야 한다. 그래야 매듭을 푸는 일이 없다.
컨펌받고 준비하다가 딴소리해서(아이디어가 넘치신다^^) 엎어지고 샛길로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겪을 만큼 겪었다.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드릉드릉병이 도져서, 빨리 컨펌받고 진행시키고 싶어서 눈이 시뻘개진 나는 그런 신중함 따윈 없었다. 이미지 한 장으로 컨펌을 받았고(받았다고 생각했고) 유관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을 끝냈다. 아, 이제 좀 진행되는구나 싶어 홍보 콘텐츠도 의뢰했다. 시안 작업 끝나서 상사에게 가져갔는데
가져갔는데, 쌔한 느낌은 또 틀리지가 않지. "이거 바꾸려면 대표이사 승인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오마갓. 상무님이 컨펌해주시면 끝난 거 아니었어요? 대표이사 승인 못 받으면? 이미 유관부서에 컨펌 났다고 이거 진행하는 거라고 다 얘기해 놨는데?
아. 식은땀이 흘렀다. 1차 컨펌 단계에서 대표이사 승인 필요하니 보고자료 준비해 달라고 말해줬음 안 되나?라는 원망감이 0.2초 정도 스쳤으나 이게 다 부족한 나 때문이지, 누구 때문이니.
상사의 컨펌인 듯 컨펌 아닌 컨펌 같은~~어물쩡 화법과 업무 방식을 겪을 만큼 겪어 봤으면서 "이거 대표이사 보고 안 하셔도 되나요?"라고 한 번 더 확인할 생각은 왜 안 했니.
난 왜 이모양일까. 난 늘 이모양이지. 이 회사에서 매일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