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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an 21. 2020

나의 연애 자존감

뭐하러 세 번씩 만났을까

자존감이 몇 점이냐는 질문을 받으면"70점 정도"라고 대답했다.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100점!"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생각할 겨를 없이 100점을 외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조금 망설이다 60~80점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자존감이 높지 않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 나는 자존심은 강한데 자존감은 낮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겉으론 세 보여도 공략하기 쉬운 유형>이었다. 누가 먼저 좋다고 하면 자동문처럼 마음이 쉽게 열렸다.


마음은 쉽게 열리는데, 좋아하는 감정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세일 기간에 싸다는 이유로 물건을 집어 계산대까지 갔는데, 정말 갖고 싶은지 확신이 안 서 카드를 손에 쥐고 고민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일단 지갑 열었으니 지르고 봐야지! 이렇게 시작한 연애는 후렴까지 듣기 싫어 도입에서 정지 버튼 누르게 되는 음치의 노래 같았다.


그래도 세 번은 만나보라는 충고를 내가 왜 들었을까. 10년 가까이 소개팅을 하며 나는 번번이 호감 가지 않는 이성과 두 번째 약속을 잡았다.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시간에 술이나 더 마시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호감 없는 이성과의 데이트보다 혼술이 더 편하고 즐거우니까.


30대가 되면서 맘에 드는 상대보다 싫은 상대를 골라내는 게 우선이었다. 보나 마나 별 거 없을 걸 알면서도 세 번까지는 만나려고 노력했다. 비호감은 아닌 상대가 나에게 애프터를 청했다는 사실이 구멍 뚫린 자존감을 조금은 메워주는 것 같아서 & 그래도 세 번 만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비슷한 질문을 들을 때가 많다. "세 번은 만나야 할까요?"라고.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첫 만남이 별로면 두 번째 만남도 별로고 두 번째 만남이 별로면 굳이 세 번째 만남까지 갈 필요 없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묘하게 정서가 나랑 안 맞는데, 하도 좋다고 해서 3편쯤 참고 보다가 포기했다. 첫인상이 별로면 괜찮은 부분을 발견해도 결국 별로였다.


연애 자존감이 낮으면 선택받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끌리지 않는 이성에게 선택받은 것에도 기뻐하고, 안도한다. 한 번 이상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의 무료 식사권 이벤트에 당첨된 것 같다. 당첨 사실은 반가운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 식당 문을 열고 싶지 않아진다.


나는 딸에게 함부로 연애 충고를 할 입장이 못 된다(내 연애가 그지였으니). 그저 딸이 스스로 선택하고 겪는 모든 상황에 마음 깊이 공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성을 만날 것이고, 상처를 받을 것이고, 상처를 주게 될 테니까. 다만 나처럼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관계를 상대가 나보다 먼저 원했다는 이유로 섣불리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식은 배가 고플 때 먹는 것처럼, 연애도 연애가 고플 때 자연스레 찾아온 인연과 하면 된다.


******


결혼 후 나의 연애 자존감은 몇 점일까? 부부싸움을 한 날 하드코어한 내용의 카톡을 썼다가도 남편이 "너랑 못 살겠다"며 이혼 서류를 준비할까 봐 슬그머니 지워버리고 만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는 여전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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