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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음 Apr 25. 2021

간장종지 내 마음, 냉면그릇 되나요?

<결혼은 그냥, 버티는 거야> #11.

나는 정말 태평양 같이 넓은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 착한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니, 내 마음의 그릇은 사실 간장종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은 게 살짝 민망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라고 자고해 왔던 (스스로 높여왔던) 나의 자만심을 확 끌어 내려와 준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둥글둥글하고 서글서글한 성격 좋은 사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정말 이것이 인간의 가장 밑바닥인가 할 정도로 바닥을 드러내고 나면, 증오와 미움과, 분노와 억울함과 죽고 싶고, 죽이고 싶은 그런 못된 마음 그런 것들이 뒤엉켜 만화에 나오는 검은 연기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그런 날엔 (종교를 초월해) 법륜 스님의 정토회 즉문즉설을 들으며 별의별 남의 사는 얘기에 공감하고, 인생 팁도 얻었다. 어떤 날들은 거기에 나오는 사연들이 나를 정말 뜨끔하게 했었는데 그중 기억나는 내용을 소개하자면, 스님 왈, “착한 여자”가 제일로 무섭단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본인이 착한 줄로 착각하는 게" 제일 무섭다는 소리이다. 딱 나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아내감이지, 이 정도면 좋은 엄마지, 이 정도면 착한 여자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뼈 때리는 소리였다. 착각은 자유였나 보다. 


아이 셋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누구의 도움받지 않고 오롯이 부부 둘만이서 어린아이 셋을 키우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각양각색, 바글바글, 동분서주 정말 혼을 쏙 빼놓는 일이다. 게다가 남편과 싸우기라도 하면 온 가족 다섯 명이 냉랭한 기운 위에 그래도 해야 할 일은 꾸역꾸역 해야 하니  마음도 머리도 정신이 없다.


 어느 날이었다. 역시나 아이 셋이 영혼을 빼놓았던 그날,  도저히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남편이 한계를 넘어섰는지, 소리쳤다.


"목 잘린 닭이 미쳐 날뛰는 것 같아! 미치겠다고!!"  


그때는 표현이 너무 무서웠지만, (참고로 미국에서는 자주 쓰이는 이디엄입니다; "like chicken with its head off") 내가  생각과 의지대로   없는 생활에 떠밀려  우리 부부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서 어쩌면  간장종지 같던 서로의 마음 속  인내의 한계선은 지워지고 다시 만들어진다. 내가 원해서 인내심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할 수 없이 타의적으로 마음이 넓어짐을 인식한다.


대신 고무줄이 늘어나듯이 인내심이 한 번에 쭉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번 만들어진 간장종지 같은 내 마음은  깨어지고, 금 가는 아픔을 겪은 후,  더 많은 흙으로 붙여지고, 또 깨어지고 금가고, 흙을 덧붙여져야만  냉면그릇만큼 커 질 수 있다.


요즘 나의 16년 결혼생활을 뒤돌아 보면,  난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럽고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한편으론  동시에 성장의 기회를 준 이 결혼생활 자체에 조금 감사하다. 나의 결혼생활이 아니었더라면, 나의 가장 깊은 바닥을 볼일도 없었을 테고, 그냥 나는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았을 텐데. 타인에 의해 나를 객관화할 수 있으니 어쩌면 정말 감사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젠 이 결혼생활이 조금은 덜 억울하다.

결혼생활을 통해 남편과 나, 우리는 서로를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 번호순으로 글을 읽으시면 흐름을 이해하시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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