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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Feb 07. 2023

알몸으로 입성하는 남녀공용 사우나 -2

거기! 다 벗으세요!

"아이 안비싸 안비싸"


분명히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을게 뻔한 친구의 대답이 들려왔고, 그런가보다- 하면서 사우나까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조차 함께 목욕탕도 안 가본 거 같은데 이거 괜찮나? 하는 생각은 트로피칼아일랜드를 가는 차 안에서 들었다.


하지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이고지고 짐을 지고 나타난 친구는 그런 것 따위 전혀 걱정 없다는듯, 허허 웃고만 있었다. 당시 절망적이었던 나의 요리솜씨를 걱정하는 손에는 양파절임이 투명한 요리에 한가득 들어있었고. 이거 먹고 나에게 잠자리를 내어줘라 하는 당당함에는 근거있는 맛있음이 있었다. 트로피칼아일랜드를 향하는 전날, 우리는 수영복입는 몸이고 자시고 개의치 않고 고기를 사다가 야무지게 구워먹었다. 삼겹살에 양파절임, 정말 끝장나는 조합이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잠시 샛길로 새어보자면, 요리, 그거 누구나 할 수 있다. 요리를 못하는게 아니고 안하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강함 의견이 있는 사람인데, 독일에 처음 왔던 당시 라면하나 제데로 끓이지도 못했던 사랑이 이제는 파스타를 휘끼휘끼 만드는 사람이 되었기 떄문이다.


각설하고, 그렇게 대망의 그 날이 다가왔다.

매표소에서 (지금은 코로나 시기를 거쳐서 사전예약을 받기도 한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하여서 가고 싶다면 미리 홈페이지에서 알아보고 가시길..!) 꽤나 거금을 들여 사우나까지 구매를 했다. 옆에는 수영복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이 있었고, 몸만한 타월과 샤워가운을 대여해줄 수 있다고도 했다.

꽤나 가벼운 짐을 들고 온 친구에게 넌 저런것이 필요가 없냐, 하고 묻자, 아이, 내가 독일생활 몇년차인데, 저런건 다 상술이다. 하며 어서 들어가자고 등을 떠밀었다.


그 렇게 입장한 트로피칼아일랜드에서 슬리퍼 없는 친구놈은 아이고, 아야 하며 걸어다녔고, 모래밭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실은 이런데 처음와봐서 너무 놀랬다. 라는 감상을 뱉었다. 이런 솔직하지 못한 녀석.


물에도 둥둥 떠 있어보고, 이런저런 놀이기구도 타 보고, 미끄럼틀도 이용해보고.  인생은 폼생폼사라며 숨쉬듯 말한 우리 둘은 나름대로 썬글라쓰를 얼굴에 척 얹어놓은 채였다.

'이제 가자 사우나'

친구가 결연하게 말을 이었다.

'시간이 부족할지도 몰라' 라면서.


그래서 다시 주섬주섬 일어나 -여전히 아이고 아야-하면서 멀고 먼 입구로 돌아와 '우리 이제 사우나 가려는데요'하고 이야기 했다. 독일에서 꽤 살았지만, 멋도 모르던 친구는 '상술'이라고 외치던 그 타월을 대여했다. 추위에 덜덜 떨던 얼굴에 비로소 피가 도는 것을 보고, 너도 참 너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입성한 사우나. 거기는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도, 아이들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세계.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 둘이었지만, 여기는 인류가 가득한 에덴동산같았다. 그 둘이 쫒겨나지 않았다면 마치 이런 모습이었을까.


가볍게 샤워할 수 있는 곳이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뽀얗거나 까맣거나 혹은 노랗거나 하는 궁둥이들이 물을 맞는 중이었다.


잠시 얼어붙어있던 우리는 샤워기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긴장감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척 봐도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는데 그게 이상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샤워실에 들어가니 필연적으로 몸을 가리던 천쪼가리와 이별을 고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대중탕에가면 수건은 사치다- 하면서 당당하게 잘 다니면서 여기서는 왜이리 쭈그러드는가. 자꾸 말려가는 어깨를 애써 당당하게 폈다.


샤워실에는 우리 둘, 그리고 후에 들어온 다른 이가 하나 있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애써 고개를 내리지 않는 우리를 보면서 윙크를 날렸다는 것은 차치하자.


그렇게 샤워 물줄기로 몸을 닦아내고 나오니 보글보글 거품이 일어나는 작은 탕에 이사람, 저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보글거리는 물방울이 나름 모자이크의 효과를 내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직 훌렁 벗고 혼용탕에 들어갈 자신이 없던 우리 둘은 말려가는 어깨를 다시 한번 추겨 올리며 사우나 문 앞에 다다랐다. 언제 이걸 벗고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어서 주춤거리며 괜히 여기는 온도가 몇도네, 독일도 이런 뜨근한 사우나가 있네- 하며 중얼댔다.

'잠시-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흰머리가 지긋한 두 부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펄쩍 뛰여

'네ㅔ-'

하고 대답하며 허둥지둥 비텨주자 코트를 벗듯이 자연스럽게 몸에 걸친 천쪼가리를 벗어서 사우나 밖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 작은 타월만 들고 입장하는 것이 아닌가. 대충 따라해보자 하며 주섬주섬 옷을 벗고 있는데 사우나 문이 열리며 안에 있던 다른 이가 나왔다. 그러다가 들어가려던 우리를 보고 문을 열어주며 -먼저 들어가세요-하고 문을 잡아주었다.


아, 이 나이스한 사람들. 알몸으로 이렇게까지 나이스 할 일인가.  

고개를 까닥하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는게 아닌가. 내 미친 눈동자!!

아래로 떨어지는 목덜미를 이성의 끈으로 재빠르게 붙잡아 올렸다. 이렇게 나체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곳에서는 시선은 얼굴을 향하는게 예의다. 어제 잠시 찾아본 인터넷의 충고를 되새기며 후끈한 곳으로 입장했다.


자유롭게 누워있고, 앉아있는 사람들.


나의 땀을 한방울도 이 사우나 안에 납기지 않겠다는 마지막 예의인 작은 타월을 붙들고 앉을 자리를 물색했다.(타월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맞다)  들고 있는 타월로 오묘하게 몸을 잘 가린채 비어있는 자리로 다가가니 사람들이 또 웃으며 -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시선은 내 얼굴에 둔 채로. 자연스러운 척 하며 '안녕'하고 화답하는데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는게 느껴졌다. 아이고 부끄러와라.


그렇게 최초의 사우나를 들어갔다 오자 나도 샤워기 앞 궁둥이 대열에 합류하며 몸을 씻어내렸다. 서로의 몸을 흩어내리지 않고 그냥 사우나를 즐기던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대면하고 나니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너 곳 더 들어갔다 오자, 친구도 나도 긴장이 완연히 풀려 보글거리던 탕에도 들어가고 가볍에 샤워 가운만 입은 채로 편안한 휴식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 하고 나가려는 무렵, 갑자기 작은 소동이 일었는데, 보안요원이 삐로록- 하는 호루라기를 들고 들어온 것이다. 거기에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그곳을 활보하던 동양사람 셋이 있었다.


"벗으세요!"


사람들이 고개를 쑤욱 빼고 - 뭐야 뭐야 하며 웅성거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시선을 받은 이들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나가서 벗고 오겠다- 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으나 보안요원은 가차없는 사람이었다.


"당장! 여기서! 벗어!"


몇번씩 일어나는 일인지, 잠시 구경하던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스스로의 쉼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눈을 돌려 가던길을 마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안요원과 수영복 무리만 여전히 대치상태였다. 출구에 다다라 흘끔 고개를 돌려보니 보안요원앞에서 수영복을 벗고 마침내 자유가 된 이들의 궁둥이가 보였다.


저들도 이따가 이곳을 나갈 때 쯤이면 좀 더 편안한 마음이 되어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은 한순간일 뿐.

궁둥이 만세.



오늘도 눈이 왔다. 따뜻한 차 한잔을 내려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따뜻한 사우나가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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