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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Nov 26. 2023

독일과 때수건

샤워로 이겨내야 하는 근지러움

양머리를 척 얹어올리고 훈제계란을 탁 까던 시절. 탁탁 하며 깨진 계란 껍질 사이로 윤기나는 갈색 속살 이 보이고 소금에 살짝 찍어 한입 - 베어먹으면 쫄깃쫄깃 짭조롬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그뿐이랴 얼음 동동 띄운 달짝지끈한 식혜 한 모금 꿀떡 넘기면 온 몸으로 퍼지는 시원한 맛이란. 그렇게 적당히 배를 채우고 나면 각종 이름을 붙인 뜨끈뜨끈한 찜질방을 돌아다닌다. 활화산에 들어간 것 같은 뜨거운 공기 속에서 콧잔등을 따라 또옥또옥 떨어지는 땀방울들. 그렇게 코 속까지 열기로 가득 채워 땀 한번 쫘악 빼고 나면 욕탕으로 넘어간다. 땀에 절어 축축해진 찜질방 옷을 얼른 벗어던지고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찜질방에 들어 가기 전 가볍게 샤워는 했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다!


시원한 물줄기로 땀부터 한 번 씻어내린 뒤, 뜨끈한 탕으로 직진! 뜨거운 물에 풀어지는 티백처럼 흐믈흐믈 해질 때 까지 온몸을 담궈둔다. 싸르르 하면서 마지막 세포 하나까지 다 늘어지는 기분이란. 피곤까지 싸악 씻어내고 나면 이제 묵은 때를 밀어낼 시간! 인데. 맞아. 바로 그 시간인데.




마음 한 구석에 찜질방을 묻어두고 사는 한국인은 어찌저찌 독일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는 했다.

계란 탁, 식혜 한모금 정도는 브레첼과 오렌지쥬스로- 뜨끈한 찜질방과 욕탕은 어정쩡한 온도의 사우나와 온천으로 어찌어찌 대처할 수 있다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힘이 남는 날은 내 손으로, 도움이 필요한 날은 ‘텍마머니’를 외치며 전문가(세신사)의 손으로 묵은 때를 벗겨내는 그 중요한 의식을 할 수 가 없다. 가끔 운이 좋으면 노곤하게 풀어주는 맛사지도 서비스로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원함을 찾을 수가 없다.


묵은 각질을 박박 밀어내는 것이 과학적으로 피부에 그리 좋지 않다, 혹은 인종마다 피부 타입이 다른데 한국인에게 맞는 방법이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에는 ‘어떤 삶’에 대한 추억이 곁들여진 의식이다. 뜨끈한 욕탕에 들어가서 종알종알 떠들던 추억, 냉탕에 들어가 바가지 두개를 겹쳐 퐁퐁 거리고 수영하던 추억, 그러다가 욕탕에 들어오시는 모르는 어르신께서 ‘요놈-!’하면 움찔해서 가만히 앉아있던 기억. 종종 사먹던 얼음동동 식혜와 내 몫은 아니던 아이스커피 한모금, 때로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찜질방 옷을 입고 미역국을 사 먹던, 라면을 호로록 삼키던. 그런 기억이다.


그 추억의 마무리는 그간의 힘겨움을 뜨근한 욕탕에서 풀어내린뒤 적당하게 사각거리는 때수건으로 박박 문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피곤함과 긴장감이 켜켜히 쌓여올려진 날이면 그것들이 몸서리치게 그리운 것이다.

샤워실 안에 들어가 하루의 피곤함을 애썻 씻어낸다지만, 아무리 뜨겁고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라도 뭉근하게 몸을 풀어주는 욕탕같은 푸근함은 없으니. 아무리 까끌거리는 샤워볼이라도 사각사각 각질을 다떨궈내어주기에는 역부족이기도 하고.


어떤 감상적인 시각을 떠나서 실지적으로도 한번씩은 박박 밀어버리고 싶다.

여름에는 찐득한 땀을 그렇게 씻어내고 싶고, 겨울에는 꽁꽁 싸매어 입었던 피부를 그렇게 좀 풀어내고 싶다.


하지만 때 한번 밀어보겠다고 샤워장 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로 몸을 불리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 아래 서 있어야 하고, 그러다보면 덩달아 울고있는 통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 뻔하니까.

그리고 도구도 좀 문제다.  한국에서 ’이테리 타올‘로 불리는 그 초록색의 때 수건 몸을 밀어내려면 온 몸을 시뻘겋게 불태울 것만 같은 그 욕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옴 몸은 온통 쓸린 자국으로 도배 되고야 만다.  그래서 독일에서 떄 수건 비슷 한 것이 보여서 냉큼 사 보았지만, 아이고, 성에 차지 않는 미끌미끌 거림뿐이다. 이것으로는 몸을 박박 문질러도 채 다 씻겨내리지 못한 각질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것 만 같은 찝찝함이 있었다.


보드랍고, 보드라운 독일의 때수건들


무엇하나 나의 정신적, 현실적 깨끗함에 이렇다 할 해결책은 주지 않고, 어설픈 도움이 되고 있을 무렵 ’스크럽‘이라는 방법을 다시 도입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요놈을 신뢰하지 않았던 이유는, 첫 기억이 너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독일에 돈 이후, 값싼 가격에 이끌려 샀던 스크럽 제품은 너무 부드러워서 영 성에 차지가 않았다. 어찌어찌 다 사용하고 나서 ‘거칠거림’ 지수가 더 높은 것을 골라봤지만, 에이. 이것도 영.


요놈도 저놈도 다 시원치가 않으니 스크럽 제품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생일 선물로 ‘소금으로 만든 스크럽’을 내밀었다. 바란 적 없던 선물이지만, 뭐든지 ’모셔놓을 바에는 사용을 하자‘ 라는 실용주의가 만연한 나의 집에서는 반드시 쓰임새를 다 해야 했다. 큰 기대없이 똘각 열어보니 기분 좋은 향이 온통 사르르 퍼졌다. 게다가 이게 왠걸, 적당한 사각거림과 까끌거림, 거기다 약간의 오일까지. 셕회물로 퍼석거리던 피부에 생기를 주고, 굵직한 알맹이의 소금이 몸을 사각사각 쓸어내려 주며, 물줄기가 닿으면 호로로록 씻겨내려가기까지. 그제서야 가슴 한 켠에 남아있던 근지러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물건은 가격은 안 좋기 마련. 매번 집에 구비해놓기에는 부담스러운 몸 값을 자랑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환경오염이 대두되면서 ‘친환경 소재’로 만든 스크럽 제품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더니 ‘소금’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독일 로드샵에도 쏟아져 나왔다.


그 뒤로는 종종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표를 붙이고 나온 ‘소금 스크럽’을 하나씩 구매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가 유난히 길었던 날, 피곤함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날, 샤워해도 사라지지 않는 찐득거림이 느껴지는 날, 마음 한 켠에 담아두었던 ’때수건의 추억‘과 함께 스크럽을 꺼내 든다. 그렇게 온 몸을 박박 문질러주며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던, 때가 박박 밀리던 어린날의 추억을 꺼내보는 것이다.


참을 수 없던 근지러움을 마침내 씻어내고 나면 로션을 챡챡 발라주고는 시원한 생수 한 잔으로 다시 힘을 복돋아 본다. 밀어낸 각질만큼이라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한국식 때수건은 하나는 가져오자

2.샤워 후, 보습을 잘 챙기자

3. 샤워로 안 될 것같은 날을 위해 스크럽이 있다

4. 스크럽 할 때 샤워기는 잠궈두자. (흐르는 물줄기 만큼,  연말의 내가 통장을 부여잡고 울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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