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식 욕실에서 살아남기
독일로 온 첫날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정도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욕실에 물 넘치면 안돼!”
에이, 바보도 아니고 누가 욕실에 물을 넘치게 해?
라고 가벼이 생각했지만, 건식욕실을 처음 마주한 충격과 공포란. 세면대 아래 뽀송한 러그가 깔려있고, 방에서 신던 슬리퍼를 욕실까지 쫑쫑 신고 들어간다니!
게다가 종종 도시괴담처럼 들려오는 - 했다더라 시리즈는, 어떠한가 하면-
물이 넘쳐서 아랫집 천장 다 뜯는 공사를 했다더라
공사비로만 수천을 물어줘야했다더라
물 넘치니까 하우스마이스터(건물 관리인)가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했다더라
본인 부담으로 건물 전체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더라
등등, 이루 다 말할수도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도시 괴담이면 좋겠지만, 정말로 실재하는 이야기이니, 우야든둥 독일식 건식 욕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욕실 청소, 한국편은- 쫘아악 뿌려지는 뜨거운 물줄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스며들어가는 락스, 물때부터 보이지 않는 온갖 오염들을 물로 시원하게 씻어내는 것이었다.
거기다 욕실은- 가족 구성원이 샤워라도 하고 나면 항상 뜨거운 수중기가 몽글 맺혀 있고.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는 욕실 슬리퍼를 구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샤워하면서 여기저기 물 뿌리기 장난도(물론어릴때이다. 엄마 아빠 죄송..)서슴치 않았고. 욕실에서는 미끄러질 수 있으니 항상 조심조심 다니라는 이야기를 어릴적부터 들으면서 컸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왠걸! 바닥이 방과 다름없이 뽀송 그 자체이다. 심지어 욕실 바닥에 물 빠지는 구멍도 없다! 그야말로 물이 넘치면 물난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욕조가 있는 집도 귀하다. 난방비가 비싸다보니 반신욕을 욕심껏 했다가는 월말 정산때 흑흑 울면서 그동안의 행복 비용을 지불 해야 한다. 대부분 샤워 부스가 있고 물 샐 틈 없이 꼭꼭 막히는 부스 안에 들어가 단단하게 문을 닫고 샤워를 한다.
만약 샤워 커튼만 있는 곳이라면, 샤워커튼 끝자락이 바깥쪽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갈무리해 놓고 최대한 몸을 샤워실 안 쪽으로 구겨넣고 샤워를 한다.
사실 약간의 물이 튀는 정도는 호다닥 닦아내면 되지만, 가끔 ‘욕실은 물청소지’하면서 아직 이 나라의ㄹ 생황에 익숙하지 않으신 뷴들이 양껏 물을 뿌렸다가 아럇집 부터 하우스마이스터까지 우당탕탕 달려온 일화는 실재한다.
이렇게 방이나 욕실이나 물질 없이 닦아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특히 용변기 사용에 있어서는 여자든 남자든, 다리 가동범위가 있어서 앉을 수 있는 모든 생명체는 앉아서 용변을 봐야한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전부 다!
가끔 그래서 한국에서 컨퍼런스 등등의 이유로 독일에 오시는 분들에게 <용변기는 앉아서 사용하셔야 합니다>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안내 문구가 전해진다. 자주 외국에 출장하는 이들은 그저 무심히 ‘네에’ 하고 마는가 하면, 그런 문구가 어색한 분들은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어쩔줄 몰라하는 것이 태반이다.
건식 욕실이다보니 호텔에도 욕실 안 쪽에 항상 발수건을 구비해놓는다. 그래서 제공되는 수건중에 두툼하고 짝이 맞지 않는 녀석은 으레 발수건겠거니 하고 바닦에 깔아놓고 물넘침을 방지한다.
심지어 석회가 많이 포함된 물, 석회물이다보니 물자국을 그때그때 지워주지 않으면 허옇게 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샤워부스 안에서 샤워 후에 물방울이 남아있지 않게 스윽스윽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면대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세면대 옆으로 물이 튀면 그것은 재빨리 닦아두어야 미래의 나, 청소하는 너와 원만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 방식이라 어색했지만 이젠 그려러니 하며 지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제는 미끄럽지 않은 욕실을 사용하는 것이 꽤나 만족스럽다.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욕실 슬리퍼가 일반 가정집 안에서는 필요가 없다
2. 욕실에 물이 넘쳤다면 어이구어이구 하며 얼른 닦아야 한다
3. 만약을 대비해 보험을 하나 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4. 난방비가 비싸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샤워는 빠르게 으쌰 하고 끝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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