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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Nov 15. 2023

모르는 사람이랑 한집에 살아요

우리 함께 돈을 모아 집세 뿌셔!

‘안녕, 너가 우리 집에 관심을 가져줘서 기뻐- 우리 우선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당신이 우리 집에 관심이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 우리는 매주 번갈아 가면서 청소를 하고, 종종 함께 모여 식사를 합니다. 온라인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15시 30분 이에요. 그때 만나요!‘



위 내용은, 독일에 도착한 이후 집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 저리 이메일을 쓰고 받은 수 많은 2차 면접 초대장이다. 내가 얼마나 착하고 방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인지를 어필하면서, 수입과 성격까지 투명하게 공개한 자기소개를 열심히 한 이메일을 날리면, 한 20통 중에 4,5통의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받은 초대장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면접 기회를 부여해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용모를 단정히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또로로롱, 온라인 면접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직접 가서 만나는 방법도 있다.


내가 돈을 내고 살겠다는데도 면접을 보는 지독한 독일갑자들. 면접이 시작되면 입꼬리가 파들거릴정도로 하하 웃으면서 내가 얼마나 멀쩡한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위와 같은 집을, 독일에서는 Wg라고 이야기 한다. Wohngemeinschaft - 공동주택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한국의 일반 가정 집과는 조금 다르게 ,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실이 없고 분리된 주방, 화장실, 작은 복도, 방 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집이 많다보니 이러한 주거 형태가 나올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흔히 거실로 생각하는 곳도 하나의 방의 개념이 된다- 그러니 독일에서 방 2개짜리 집! 이 되면 방하나, 거실 하나라고 생각하면 얼추 생각하는 그림과 들어맞는다.


게다가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위한 독립된 아파트는 꽤나 비싸고 매물이 잘 없기 때문에, 수입이 안정적이거나 보장된 일자리를 가진 직장인들이 우선순위로 가져간다. 따라서 대학생이나 갓 사회 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들이 종알종알 모이는 경우가 잦고 혹은 집세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던지, 혼자는 외로워서 싫은 사람들,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공동 주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넓은 집을 소유한 집주인들도 방을 놀리기 보다는 세입자를 구해서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Wg에 입주하기 위해서 높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멀쩡한 사람들, 그리고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기 때문에.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이 비단 집주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이 살게 될 인원들에게도 권한이 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Wg를 구하다보면 꽤나 귀여운 소개글도 읽을 수 있다.

-여기는 비건들이 모여 삽니다. 우린 아삭아삭 풀을 좋아해

-여기는 금요일마다 영화를 보는 영화광들이 삽니다.

-우리는 운동을 즐겨, 너가 활발한 사람이면 좋겠어.

혹은

-절대, 절대 서로 사생활 터치하지 말고 지내자

-우리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각자 청소만 깨끗하게 하자.


각기 어려성격을 나타는 소개글을 잘 읽고, 들어가고 싶은 집에서 원하는 인재상임을 밝히면 높은 확률로 2차 면접에 다다를 수 있다.


요즘 집세도, 물세도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이렇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집세를 부시는 방법이 매력적인 제안인 것은 사실이다.

한동안 내가 살았던 Wg는 독일인 한명, 미국인 한명이 룸에이트였다.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서 배정받은 기숙사가 한 달에 약 200유로(24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고 살 수 있게 배정해 준 집이었다. 나는 기숙사를 통해 배정받은 거라서 별 다른 면접 없이 입주했는데, 그 뒤로 친구들이 처음 독일에 사는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다만 시일이 지나 한국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밥솥이 왔을 떄, 꽤나 귀여운 사건이 하나 터졌다. 오랜만에 밥솥으로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을 먹을 생각에 꽤나 들떠있었다. 쌀을 조물조물 씻어서 밥솥에 안착해놓고 반찬으로 먹을 만 한 것을 구매하러 집 근처 수퍼마켓에 갔다. 그 사이 밥솥은 집에서 혼자 남아 열심히 밥을 짓고 있었고.


그때 학교에 있어야 할 독일 친구가 그날따라 집에 일찍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풍기는 고소한 새 밥 냄새. 친구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밥솥을 열어보았고 거기에 윤기와 찰기가 좌르르 흐르고 있던 갓 지어진 쌀밥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직 내 번호도 모르는 사이지만, 갓 지어진 쌀밥을 먹고 싶기도 했던 이 친구는, 내가 이제오나 저제오나 하면서 복도를 서성이다가 결국 결심을 내렸다. 먹고 사과하기! 라는.


그래서 이것저것 으쌰으쌰 하고 챙겨서 집에 돌아갔더니, '내가 한입 먹었어 미안해'라는 사과편지와 새 쌀(독일에서는 500g씩 소분해서 판다). 그리고 젤리와 초콜렛이 밥 솥 옆에 놓여 있었다. 톨깍 하고 밥솥을 열어보니 한 공기 퍼간 흔적이 남아있었고.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뻘쭘하게 방에서 나와서 '히히, 맛있더라.'라고 말하는 얼굴에 그만 빵 터져버렸다. 그럼, 이거는 쿠쿠가 한 밥인데. 독일제 시끄러운 전기밥솥이 한 맛과는 비교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밥을 한 날이면, 코를 킁킁하며 ‘오늘은 왠지 이게 땡기는데!’하면서  근처 아시아 식당에서 밥 들어간 메뉴를 시켜먹던 착한 친구들.


독일어 숙제를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으면 옆에와서 열심히 도와주던. (그리고 그 숙제는 다 틀렸다).

첫 Wg의 기억은 꽤나 즐겁게 남아있다. 종종 파티할 거라고 새벽 3시까지 놀거나, 친구들 20명을 집으로 불렀던 사소한 일은 이미 기억 뒷편으로 넘겼다.


다양한 사람과 힘을 합쳐 사는 Wg. 기회가 온다면 인생에 한번 쯤 경험해보시길!


 


오늘의 독일 생활 팁

1. WG에 들어가고 싶다면 최대한 내가 잘 맞는 사람임을 어필해라

2. 거절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어필하는게 중요하다

3. 스스로에게 맞는 공간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4. 청소는 깨끗이. 특히 욕실에 물 안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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